“웃돈 줘도 못 구해”…철근 수급난에 건설업계 ‘진땀’

입력 2021-05-20 17:26
지난 19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잠원동과 서초동 일대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계속되는 철광석 가격의 고공행진과 공급 부족에 의한 철강 수요산업의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성수기에 접어든 건설업계에선 철근 가격 상승뿐 아니라 철근 수급이 막혀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철근 수급 대란을 겪었던 2008년보다 상황이 나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건설자재를 제때 구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거나 공사 기간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지난 3~4월 집계한 철근·형강, 레미콘 등 주요 건설자재 수급 불안으로 공사가 중단된 현장은 59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철근·형강 부족으로 중단된 사례는 43곳으로 약 73%를 차지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59곳은 현장이 완전히 셧다운된 경우이고, 철근을 필요한 만큼 구하지 못해 공사가 지연되는 현장은 전국에 셀 수 없이 많다”고 덧붙였다.

철근 부족 현상은 공공과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에선 이미 철근이 t당 100만원 이상에 거래가 이뤄진 곳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문제는 이렇게 웃돈을 준다고 해도 철근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에서 진행 중인 대구도시철도 2호선 죽전역 서편 출입구 공사는 원래 이달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철근을 구하지 못하면서 공사 기간이 4개월 연기됐다. 조달청 역시 철근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재 공급이 미뤄진 영향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살아나면서 철광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공급이 넘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12일 기준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t당 237.57달러(약 26만9000원)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뒤 연일 20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국내에선 연초 t당 70만원 안팎(SD400, 10㎜ 기준)이던 철근 가격이 지난 14일 기준 97만원까지 올랐다. 철근 가격이 t당 90만원을 넘어선 건 2008년 5월 이후 13년 만이다.

여기에 최근 중국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철강 생산량을 감축하고 수출 제재를 본격화하고 있어 향후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 정부는 자국 철강업계에 다음달부터 생산량 감축을 시작할 것을 지시했고, 수출 환급세(증치세) 혜택도 이달부터 폐지하며 자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재를 내수로 돌리기 위한 조치를 시행했다. 그런데다 국내 일일 철근 공급의 10~15%가량을 담당하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최근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로 지난 10일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공사 지연 및 중단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근. 연합뉴스

업계에선 4대강과 보금자리주택 건설이 동시에 진행되고, 중국 내 철근 수요 확대로 수입 물량까지 줄면서 유례없는 철근 수급 대란을 겪었던 2008년보다 올해의 어려움이 더 클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국내에만 한정됐던 2008년과 달리 현재는 전세계적 문제인 탓이다. 건설업계는 정부가 적극 나서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철근이 부족해 공사가 늦어지면 아파트 입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민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 전반을 위협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철강 자재 수급 불안이 점차 커지자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8일 건설업계와 공공 발주 기관을 불러 긴급 대책 회의를 가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빠르게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 대책 마련을 위해 업계와 계속 상의하고 있다”며 “중간 유통업체들의 매점매석이 발생하는지 확인하고 단속을 진행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