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빈(19·수원)에 이어 김민준(21·울산)까지. 2000년대에 태어난 Z세대 어린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22세 이하(U-22) 선수 출전 규정 강화가 이들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프로축구 K리그1 17라운드 경기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단연 김민준이었다. 김민준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뒤 단 8분 만에 낮고 빠른 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단순히 한 골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골이었다. K리그1 4연패. 최근 2년간 울산을 아쉬운 준우승에 그치게 한 전북의 국가대표급 수비진을 상대로 21세의 어린 선수는 주눅 들지 않았다. 수비 3명을 터치 한 번에 제치는 드리블 ‘원맨쇼’는 울산이 적진 전주성에서 자신감을 갖게 만들기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김민준은 득점 후 그라운드 위로 무릎을 꿇은 채 슬라이딩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리머니도 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엠레 찬이 하는 시그니처 동작이다. 김민준은 이날 31분만 경기를 소화했지만, 신인 선수의 자신감 있는 플레이와 특색 있는 세리머니는 팬들의 열광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신인 선수의 패기 있는 활약을 등에 업은 울산은 2019년 5월 12일 승리 이후 전북전 7경기 연속 무승(3무4패)의 고리를 끊고 4대 2 대승을 거두고 향후 선두 경쟁에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날 김민준의 플레이는 단 10일 전 같은 장소에서 수원의 영건 정상빈이 펼친 활약을 떠올리게 했다. 정상빈은 당시 프랑스 리그앙 파리 생제르맹의 킬리안 음바페를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와 최종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침투 능력을 수차례 선보이며 수원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첫 골에 관여하고 두 번째 골을 책임진 정상빈의 활약 속에 수원도 적진에서 전북을 3대 1로 눌렀다. 득점 후 음바페를 따라하는 세리머니는 이미 정상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수원은 정상빈 외에도 유스팀 매탄고를 졸업한 김태환(21), 강현묵(20) 등 또 다른 ‘Z세대’ 선수들의 활약 속에 지난 시즌까지의 부진을 털어버리고 현재 K리그1 3위에 올라 있다. 팬들은 얼굴도 앳된 이들을 ‘매탄소년단(MTS)’으로 부르며 성원을 보내고 있다.
Z세대 선수들 간 경쟁심은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내적 동기가 되기도 한다. 19일 경기가 끝난 뒤 김민준은 “매탄소년단이 전북을 상대로 잘 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 받은 건 사실”이라며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각각 벌써 4골씩 넣은 김민준과 정상빈은 그렇게 올 시즌 영플레이어상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Z세대 어린 선수들의 발전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추진한 U-22 선수 출전 규정 강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연맹은 코로나19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교체 선수를 3명에서 5명으로 늘리도록 하자, U-22 선수가 최소 1명 출전, 1명이 교체로 그라운드에 나섰을 때만 교체카드 5장을 모두 활용 가능하도록 로컬룰을 만들었다. 이런 토대 속에 대부분의 팀들은 U-22 선수를 선발 명단에 포함시키게 됐고, 어린 선수들은 실전에서 맞부딪치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연맹 관계자는 “U-22 선수 육성에 대한 각 구단의 공감대가 있어 규정 강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며 “올 시즌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통해 U-22 선수 의무출전제도의 효용성이 입증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