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골든 타임’ 전 발굴해야”

입력 2021-05-20 17:01 수정 2021-05-20 20:22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20일 '아이가 행복한 나라, 우리가 가야할 길' 전문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김나래 국민일보 온라인뉴스부 부장, 최종균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 국장, 이상균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한결 기자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아동학대를 마주할 겁니다. 아동 1000명당 3명의 학대 사례가 발견되고 있지만 실제 사례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추계돼요. 안 보이는 곳에서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발굴해내야 합니다.”

국민일보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 ‘아이가 행복한 나라, 우리가 가야 할 길’ 세미나가 20일 열렸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조기 대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보이지 않는 학대를 국가가 적극 찾아내 맞춤형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 정책 대신 인식 변화를 첫손에 꼽았다. 학대 행위자 개인을 악마화하면 오히려 학대 사실을 숨기거나 조사에 응하지 않아 대처가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이상균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예방접종 내역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기아동을 발굴하고 있지만 해당 가정에서 방문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실효성은 크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가해 부모와 피해 아동이라는 이분법적 접근 대신 가족 전체의 환경·심리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의 심리 건강을 파악하는 게 첫걸음”이라며 “영유아나 소아 예방접종 시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부모의 충동조절 능력이나 우울 경향, ‘양육 번아웃’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부는 현재 시범사업 단계인 생애초기건강관리사업을 조속히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리 신청한 임산부가 출산하면 해당 가정을 방문해 아동의 발달 상황을 파악하고 산모의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양육 스트레스 등 학대 원인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속한 분리와 함께 문제의 원인을 교정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피해 아동을 원가정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지 못하면 정작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는 고소·고발된 사건에 한해 법원이 학대를 한 부모에게 상담·치료를 명할 수 있다”며 “분리 보호된 부모들에게도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리 기간 아이들에게 위탁가정 등 가정형 보호가 제공돼야 한다고도 했다.

아동학대 전담 인력의 전문성 확보, 제반시설 확충 목소리도 높았다. 정부는 2019년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아동학대 조사 공공화계획을 밝혔다. 이후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올해 3월엔 즉각 분리제도를 시행했다. 다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 교수는 “학대당한 아이가 도리어 ‘외상 후 애착’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분리할 땐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균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전국 76곳인 학대피해아동 쉼터를 연내 105곳으로 늘리겠다”며 “(전문성 강화 일환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도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에 정부 전반은 물론, 입법부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장의 애로사항을 파악해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은 전체 인구의 15%지만 이들이 결국 우리 미래의 100%”라며 “기획재정부나 국회가 전향적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