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에 검은 옷을 입은 채 도로에 누워있던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피해자를 인식할 수 있던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청주지법 형사3단독 고춘순 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5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A씨는 지난 2019년 12월24일 오전 4시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시속 80㎞ 도로 3차로에서 5.2t 냉동탑차를 몰다가 도로에 누워있던 B씨(53)를 치고 지나간 혐의를 받는다.
이 사고로 B씨가 현장에서 숨졌으나 A씨는 피해자 구호조치 없이 사고 현장을 떴다. 경찰은 B씨 옷에 남은 바퀴 자국을 토대로 가해 차량을 화물차로 특정한 뒤 주변 CCTV 영상을 통해 A씨의 차량을 추적했다.
사건 발생 닷새 후 체포된 A씨는 “오른쪽 뒷바퀴로 무언가를 밟은 듯한 충격이 있었으나 그것이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전방주시를 제대로 했다면 충분히 B씨를 볼 수 있었다”며 A씨에게 도주치사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단정하기에는 검찰 측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고 판사는 “사고지점은 도시 외곽에 있는 제한속도 80㎞의 편도 3차로이며 인근에 민가나 상업시설 등도 없는 곳”이라며 “또 인도 없이 가드레일만 설치된 곳이어서 사람이 통행하거나 누워 있을 가능성을 예견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숨진 B씨가 상하의 모두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상태로 누워 있던 점, 사고지점 부근의 가로등 2개가 고장 나 소등됐던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발견하고 급히 제동하거나 피해감으로써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이 사건 교통사고를 회피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오른쪽 뒷바퀴로 무언가를 역과하는 충격이 있었으나 그것이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피고인의 진술이 거짓된 변명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업무상 과실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 판사는 “도주치사죄는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지 과실이 없는 사고 운전자까지 포함하지 않는다”며 특정범죄 가중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적용하지 않았다.
김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