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백신 접종 모니터링 요구에 ‘난색’…“바이러스 유입 우려”

입력 2021-05-20 15:58

북한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링 요원의 입북에 난색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방역상황 및 조치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모니터링 수용을 둘러싼 국제사회와 북한 간의 기싸움이 이어지면서 백신 수급이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20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국제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배분 협의체인 코백스퍼실리티가 북한에 백신 공급 조건으로 모니터링 요원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해 백신 접종 상황을 살펴보겠다는 코백스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코백스가 제풀에 꺾여 모니터링 없이 공급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평양 락랑구역 충성초급중학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학생들에게 방역 규정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전했다. 교사가 한 학생을 교실 앞에 세워 예시를 들며 마스크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외부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코백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유입·차단을 목적으로 북·중 국경까지 폐쇄하는 강수를 뒀는데, 외부인을 북한으로 들여보내겠다고 하니 걱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혹시 모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입을 감안해 코백스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2월 이후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생명줄’과 같은 중국과의 국경을 걸어 잠그는 초강수를 뒀다. 올해는 북·중 국경을 일부 개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평양 락랑구역 충성초급중학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학생들에게 방역 규정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전했다.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복도에 늘어서 체온을 재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상황과 조치가 외부에 공개될 수도 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열악한 보건의료 시스템이 바깥 세계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데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자신들의 방역 조치를 두고 국제사회가 인권 문제 등을 앞세워 비판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말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북·중 국경을 무단으로 침입한 이들을 사살하라고 명령한 것과 관련해 “점점 더 가혹한 조치들에 경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며칠 뒤인 지난 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을 통해 미국이 “대유행전염병으로부터 인민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국가적인 방역조치를 ‘인권유린’으로 매도하다 못해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을 했다”고 응수했다.

모니터링 요원의 북한 입국을 두고 코백스와 북한 간 기싸움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백신 공급 시기가 더욱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당초 코백스는 이달 중 인도 세룸인스티튜트(SII)가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70만4000회분(85만2000명분)을 북한에 전달하기로 했으나 운송 문제 등으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모니터링 요원 수용과 관련해 북한의 고민은 이어질 터라 백신 공급은 지연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다만 북한도 백신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백신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