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조사없이 다 현행범 체포…인권위 “공권력 과도”

입력 2021-05-20 09:48 수정 2021-05-20 11:18
연합뉴스

서로 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상대의 처벌을 요구하는 이들을 경찰이 목격자 조사도 하지 않고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인권위는 A씨가 “경찰이 적법 절차를 위배하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낸 진정을 받아들여 관할 경찰서장에게 해당 경찰관들에 대한 주의조치를 권고했다고 20일 전했다.

건물 임대인 A씨와 A씨의 부친은 2019년 8월 임차인과 사무실 인터넷 속도 등의 문제로 다툼을 벌이게 됐다.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에 의해 쌍방 폭행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씨는 “경찰이 신고 현장에 출동해 현행범 체포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아버지를 폭행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현행범 체포를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상 명시된 행위의 가벌성(처벌할 수 있는 성질), 범죄의 현행성·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에 피진정인인 경찰관들은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도 상호 흥분한 상태로 고성이 오가고 폭행을 행사하려는 등 추가 범행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현행범 체포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 현장에는 A씨와 A씨 부친, 임차인 등 체포된 3명뿐 아니라 또 다른 임차인 1명이 더 있었는데, 인권위 조사 결과 경찰은 사건 목격자인 이 임차인의 진술을 청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목격자는 인권위에 “경찰들이 도착한 후 다툼이 종료되고 양측이 엄청 온순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인권위는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위법 행위를 막아야 할 급박한 필요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당시 현장에서 이들이 서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할 뿐 눈에 보이는 상흔은 없던 상황에서 실제 폭행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술을 듣지 않았고, 증거자료인 (목격자의) 휴대전화 동영상 등을 현장에서 확인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범죄의 명백성을 판단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신원이 확보된 상태였다는 점, 별다른 저항 없이 동행 요구에 응했다는 점 등에서 도주 우려도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이 사건에서 범죄의 명백성과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현행범이더라도 당장 체포해야 할 사정이 없다면 자진출석·임의동행을 먼저 고려하는 등 현행범 체포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수사 비례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