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싱가포르 합의’가 대북 유화 메시지로써 나올 수 있도록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회담을 목전에 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전략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 싱가포르 합의를 인정함에 따라 기대감도 한층 커졌다. 한·미 양국 모두 북·미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만큼 두 정상이 싱가포르 합의를 공동의 메시지로 발신하게 될지 주목된다.
정부는 북·미 정상 간 첫 합의물인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는 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현실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싱가포르 합의가 한·미 정상 기자회견에서 언급될 수 있도록 미국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싱가포르 합의에 부정적이었던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과 비난 담화를 거치면서 입장 변화를 보였다.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달 1일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싱가포르 합의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며 긍정적 입장을 표했다. 대북정책 검토 완료 사실이 알려진 같은 달 30일에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싱가포르 합의와 과거의 다른 합의를 기반으로 할 것”이라는 미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보도됐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19일에는 ‘아시아 차르’ 캠벨 조정관이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란 질문에 “우리 노력은 이전 정부에서 마련된 싱가포르와 다른 합의 위에 구축될 것”이라고 답해 실명으로는 처음으로 싱가포르 합의를 인정했다.
싱가포르 합의에는 북·미 간 평화체제 구축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평화체제 논의를 선조치로 하고, 한반도 전체 비핵화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요구사항이 담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 정부 당국자가 싱가포르 합의 인정을 공식화한 것”이라며 “정상회담 기자회견 등에 싱가포르 합의가 들어가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을 상대로 바이든 행정부가 유화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최대치가 싱가포르 합의 관련 메시지라는 시각도 있다.
캠벨의 싱가포르 합의 언급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대북 스탠스가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싱가포르와 다른 합의를 함께 말한 것은 여타 합의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합의를 부정하겠다는 건 아니라는 의미”라며 “싱가포르를 포함해 기존의 여러 합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앞서 밝힌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도 “싱가포르 합의의 원칙을 인정하는 수준인 것인지 싱가포르 합의에서 (북핵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애매하다”며 “대북제재도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는 한 (완화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선을 그었다”고 분석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