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교육 행정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가교육위법)이 지난 13일 국회 교육위원회 안건조정위를 통과하면서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 “국가교육위 연내 출범”을 언급하자 여당은 법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이 과정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의 소신으로 보이는 발언이 몇 시간 뒤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면서 정부와 여당의 추진 의지가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총리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1년 내 제도를 바꾸기 어렵다. 현 교육부 체계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등 그간 축적한 고민을 정리해 다음 정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제공하려 한다”며 차기 대선주자 몫으로 넘길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얼마 뒤 국무총리비서실이 설명자료를 내고 “(총리가) 국가교육위법 논의 진전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발언”이라며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잘 모르고 한 말 치고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을 감안한 발언이었지만 발언을 즉각 주워 담은 건 현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 뜻 거스를 수 있나
국가교육위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교육 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정권 출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리셋’ 되고, 심지어 교육부 장관의 성향에 따라 1~2년마다 손바닥 뒤집듯 하는 상황을 탈피하려는 목적이다.
다만 설치를 추진한 문재인정부 집권 기간 중 국가교육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보면 위원은 모두 21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 지명 5명, 국회 추천 9명, 교원단체 추천 2명, 대교협·전문대교협 추천 각 1명, 시·도지사 협의체 추천 1명, 교육감 협의체 대표자, 교육부 차관이다. 국회 9명 중 4명은 여당 몫이다. 대통령 5명과 교육부 차관을 합치면 친정부 위원만 10명이다. 국가교육위는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므로 문재인정부는 친정부 위원 외 1명만 끌어들여도 국가교육위를 좌우할 수 있다.
이는 국가교육위 추진 목적과 배치된다. 국가교육위의 진가는 교육 철학이 다른 정권이 들어섰을 때 발휘돼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구성된 위원들과 새 정부가 공존하는 상황(위원 임기 3년에 1회 연임 가능)에서 국가교육위가 교육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 제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안 어디에도 정권의 압력에 대응할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위원회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선언적 규정일 뿐이다.
현 법안대로라면 대통령은 국가교육위를 ‘식물’로 만들 수 있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를 동원해 예산과 인력을 옥죌 경우 국가교육위는 실무진 구성조차 어려울 수 있다. 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어도 정권 도움 없이는 대통령령 한 줄도 고칠 수 없다. 국가교육위 업무 세부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교육부가 사사건건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정권 압력에 굴복해 ‘거수기’가 되면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고, 정권과 충돌하면 교육 행정은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4년 동안 뭐하다가… 추진 시기 놓쳤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국가교육위가 추진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당초 계획대로 문재인정부 2~3년차에 국가교육위가 구성됐다면 상황을 달라졌을 수 있다. 국가교육위가 정권에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려면 헌법기구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법률에 설치 근거를 둘 수밖에 없었는데 이 경우 정치권력에 취약해진다.
다음 상황을 가정해보자. 국가교육위법이 제정되고 연말 혹은 내년 초 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된다. 이 경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는 현 정부의 고교평준화 정책에 동조하는 위원이 다수를 차지할 수 있다. 국가교육위는 고교평준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키로 의결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도 수립한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치러진 대선에서 자사고 존치와 지원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된다. 공약은 새 정부 국정과제로 지정돼 교육부가 세부 추진 계획을 수립한다.
이 경우 새 대통령은 교육 정책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를 포기해야 할까. 국가교육위는 자사고 정책뿐 아니라 대입 정책과 국가교육과정 같은 민감한 정책도 관장한다. 새 정부와 교육 철학이 다를 경우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하는 것에서 보듯 교육은 복지, 고용 등 다른 사회 분야와도 밀접하게 엮여 있다. 차기 대선주자에게 공을 넘기자는 김 총리의 당초 언급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우려를 감안해 현 정부가 그간 내세운 것이 ‘국민적 공감대’였다. ‘교육정책에 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기능을 가진 국가교육위가 해당 기능을 발휘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각 대선 캠프들이 이를 함부로 뒤집지 못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 경우 국가교육위 범위 안에서 공약들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와 국가교육위 충돌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가교육위 추진을 위한 주요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