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에 조국 전 민정수석이 언급되면서 2019년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수사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공소장에는 2019년 6월 조 전 수석이 “이규원 검사가 수사 받지 않고 출국할 수 있게 검찰에 말해 달라”는 이광철 당시 선임행정관의 말을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그대로 전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조 전 수석은 “수사 압박을 가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죄의 적용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반면 민정수석은 검찰수사 지휘권(직권)이 없으므로 직권남용의 성립도 어렵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결국 “수사를 받지 않게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이 지시인지 의견인지에 따라 판단이 갈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 전 수석의 실제 발언 수위, 민정수석의 직무권한 범위에 대한 해석이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18일 “민정수석과 검찰이 직접적인 상명하복 관계는 아니나 민정수석의 관장사항에 법무부와 검찰이 포함돼있다”며 “그러한 포괄적 권한을 직권남용죄의 일반적 직무권한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려면 직무권한이 있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민정수석의 직권범위를 어디까지 넓혀서 볼 수 있는지가 법리적 쟁점이 될 것이란 뜻이다.
앞서 비슷한 내용이 쟁점화됐던 사례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화이트리스트 사건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자금지원을 요구한 행위가 1심에서 무죄로 판단됐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명문상 규정이 없어도 제도를 종합적·실질적으로 살펴봤을 때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면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를 하지 말라’는 표현은 민정수석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민정수석이 이를 법무부 검찰국장에 전달한 것도 직권남용의 고의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반면 민정수석에게 검찰수사에 대한 지휘권이 없는 만큼 김 전 실장 판례가 적용되기 어렵단 반론도 있다.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수사 관련 권한이 없는 민정수석의 일반적 직무권한을 넓혀서 해석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에 앞서 발언의 사실관계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아무것도 확인하지 말라고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단순히 언급만을 한 경우까지 직권남용을 적용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수사 받지 않게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과 실제로 수사기관이 수사를 못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고도 했다. 윤 부원장에게 전달된 내용과 수사에 실제 영향을 미친 부분 사이의 인과관계도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공은 윤 부원장 사건을 이첩받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넘어간 상태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 단계에서는 조 전 수석에 대한 증거가 충분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내야 하는 등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넘겨받은 공수처로선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주언 박성영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