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싸늘한 자기방어’ 의무돼” 전 의협회장의 글

입력 2021-05-19 00:14
권순욱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 보아의 친오빠인 뮤직비디오 감독 권순욱씨가 복막암 투병을 진단받을 당시 의사들의 싸능한 반응을 지적하자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그 이유를 해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권순욱 감독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복막암 투병 중인 사실을 알리면서 “복막암 완전 관해 (증상 감소) 사례도 보이고 저도 당장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하신지 모르겠다”며 병원에서 마주한 의사들의 반응을 언급했다.

권씨는 의사들로부터 ‘이병은 낫는 병이 아니다’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시도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약이 듣길 바라라’ 등의 말을 들었다고 전하며 의사들의 냉정한 반응에 상처받았다고 전했다.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제 면전에서 저리 편하게 하시니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다”는 권씨의 글에 누리꾼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의사들을 비판했다.

이에 지난 13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왜 의사들이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를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노 전 회장은 먼저 “가수 보아의 오빠 권순욱씨가 말기암 투병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젊은 나이에 매우 안타까운 상황인데, 어젯밤 권순욱씨가 SNS에 ‘지나치게 냉정한 의사들의 태도’에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며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 심정 백분 이해가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노 전 회장은 그러면서 “그가 만난 의사들이 왜 그렇게도 한결같이 싸늘하게 대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드리고자 한다”며 “한마디로 ‘자기방어’다. 그리고 ‘싸늘한 자기방어’는 의사들의 의무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권씨의 위중한 상태를 언급하면서 “만일 의사들이 이런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은 조기 사망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돌릴 수 있고 결국 의사는 법정소송으로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썼다. 또 “불충분한 설명을 이유로 의사는 법적인 책임을 지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며 “국가는, 이 사회는, 의사들에게 ‘싸늘하고 냉정한 경고’에 대한 주문을 해왔고 이제 그 주문은 의사들에게 필수적인 의무사항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노 전 회장은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바뀌길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안타깝게도 환경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의사들이 받는 것은 ‘존중과 보호’가 아니라 ‘의심과 책임요구’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의사들의 따뜻한 심장들이 매일 조금씩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권순욱씨가 이를 극복해내고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고 덧붙였다.

이런 노 전 회장의 글이 뒤늦게 회자되면서 누리꾼들은 “환자도 이해가 가고 의사도 이해가 간다” “위중한 병일수록 팩트를 정확히 말해줘야 한다” “의사한테는 일상이라 하더라도, 의사한테 상처 받은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냐”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앞서 권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알렸다. 그는 “복막에 암이 생겼고 전이에 의한 4기암이다. 의학적으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예후가 좋지 않은지 현재 기대 여명을 병원마다 2~3개월 정도로 이야기한다”고 자신의 상황을 전하면서 “여러분들의 응원과 조언들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 시도 저 시도 다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남명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