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은 ‘가짜 적대’”…실속 없는 이대남 정치[이대남은 왜]

입력 2021-05-18 02:09 수정 2021-05-18 02:09
<시리즈>
1. 남혐 말하는 이대남, 그 목소리의 정체
2. 그들의 진짜 속마음
3. 커뮤니티 젠더 전쟁
4. 정치권의 이대남 사용법
5. 반복되는 젠더 혐오, 진짜 문제는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야기하고 있다. 디지틀조선TV 캡처

여성 할당제를 폐지하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키면 될까.

‘이대남’(20대 남성)의 마음을 사겠다며 정치권이 법석이지만, 그 방식을 두고 비판이 제기된다. 논의의 폭이 ‘여성 할당제 폐지’와 ‘군 가산점제 부활’, 여성 징병 등으로 협소해지며 젠더 갈등만 증폭된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이런 1차원적 대응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남녀 사이에 ‘가짜 적대’를 만들 뿐이라고 지적한다. 문제 개선에 도움은 안 되고 불필요한 갈등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성 할당제 폐지” 주거니…“군 가산점제” 받거니

여야가 앞다퉈 내보이는 ‘청년 정책’을 살펴보면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난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번 재보선 결과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페미니즘에 올인한 결과”라며 연일 ‘여성 할당제 폐지론’을 꺼내들고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에서 민생이 무너진 것도 여성 장관 할당제 탓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군대 문제에 집중하며 맞불을 놨다. 전용기 의원은 “군 가산점 재도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며 “위헌이라 다시 도입하지 못한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전역 장병이 최소한의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기 의원도 군 복무를 마친 이를 ‘국방 유공자’로 대우하자고 나섰다. 취업·주택청약 등에서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혜택을 주자는 게 골자다. 여기에 이낙연 전 대표도 제대 남성에게 사회출발자금으로 3000만원을 주자며 가세했다. 사실상 정치권 전체가 ‘20대 남성 역차별론’을 기정사실화하며 젠더 갈등에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당황한 與, 고무된 野

이 같은 구애경쟁을 촉발한 건 4·7 재보선 결과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선거에서 서울 거주 20대 남성은 오세훈 후보에게 72.5%에 달하는 표를 몰아줬다. 여당으로선 전통적인 진보 지지층으로 믿었던 20대가 이탈한 셈이고, 야당으로선 정치적 불모지나 다름없던 청년층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자신감을 얻은 야당이 ‘이대남 정치’로 치고나가자 당황한 여당이 허겁지겁 쫓아가며 온갖 인기영합성 공약을 쏟아내는 모양새는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재보궐선거는 2017년 이후 20대가 보수야당을 지지한 첫 선거”라고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20대 남성의 긴급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 집권여당에서 관심을 보이거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가운데 여성 정책이 두드러지게 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젠더 갈등 자체가 영향을 끼쳤다기보다 다른 민생 이슈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 정책만이 두드러져 보인 게 문제라는 것이다.

“실증 근거 없는 ‘남성 역차별’…젠더 갈등은 가짜 적대”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는 모두 ‘역차별론’에 매몰돼 헛다리를 짚고 있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20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실증 분석에서 드러난 적은 없다”며 “젠더 갈등은 일종의 가짜 적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역차별 같은) 그런 담론을 누군가가 계속 부추기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면서 그 사례로 과거 영호남 지역 갈등을 들었다. 갈등할 이유가 없는 쌍방이 정치권에 의해 싸우도록 부추겨졌다는 점에서 젠더 갈등과 지역 갈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2019년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추가 합격한 이들의 76.1%는 남성이다. 여성가족부 제공

젠더 갈등 논란에서 매번 등장하는 “할당제가 역차별을 낳는다”는 주장부터가 과장된 측면이 크다. 할당제로 혜택을 보는 20대 남성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의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9년 이 제도 덕에 추가 합격한 남성은 235명으로 전체의 76.1%였다. 여성은 74명으로 23.9%에 불과했다. 교육대학 입학에서도 20대 남성은 사실상 할당제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이는 할당제의 목적이 한쪽 성에 혜택을 몰아주기 위해서가 아닌, 양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박 평론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자 우대 정책)엔 이유가 있다”며 “어떤 맥락에서 그런 정책이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해당 분야가 한쪽 성에 불리하게 짜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지를 먼저 보자는 의미다.

20대 남성이 역차별 받는다고 느끼는 이유


최태섭 문화비평가는 “(역차별론의) 사회적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하면서도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명제를 20대 남성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으로서 받는 혜택이 없다고 느낄 공산이 큰 탓이다. 실제로 경제활동인구조사 등 통계를 보면 20대 여성 고용률이 남성보다 2~3%가량 높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 남성이 동년배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사정은 완전히 뒤바뀐다. 남성 고용률이 여성보다 30% 가까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는 다차원적…전문가 “복합 대안 내놔야”

정치권이 청년 문제를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청년 문제는 굉장히 다차원적인데, 접근은 1차원적인 게 문제”라고 짚었다. 서 연구원은 “20대 남성만 하더라도 남녀 공히 겪는 불평등의 문제, 자산불평등·자산세습 문제가 가장 밑자락에 있고 그 윗자락에 코로나19로 격화되는 이행 지연의 문제가 있으며 그다음에는 교육제도라든지 군대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해결책은 개별 차원에서 모두 나와야 한다”며 “(정치권에선 여성과의 갈등이라는) 한 차원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할당제에 이해관계가 걸린 남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꼬집었다.

신진욱 교수도 “20대 남성에게 핵심적인 이슈는 일자리와 소득, 주거 등 사회·경제적 문제”라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적대감, 사회적 균열, 이런 것들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담론을 구성하는 건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청년실업 등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해외에선 문제를 실용적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서 연구원은 “유럽연합(EU)은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를 채택해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돕고 있고,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가 청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부처별로 정책조정위원회를 꾸렸다”며 “우리 역시 공공직업훈련프로그램 등의 인프라를 깔아 주는 게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갈등만 부각시키기보다 대안 마련에 힘쓰라는 얘기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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