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군 산모의 분만을 유도하던 중 제왕절개 등 적절한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태아가 숨진 사건 관련 법원이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7단독 황성민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인천 모 산부인과 의사 A씨(54·남)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2016년 11월 26일 오전 6시 14분께 인천 한 산부인과에서 산모 B씨의 분만을 돕던 A씨는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사건 발생 전날 오후 양수가 흐르는 상태로 산부인과를 찾은 B씨는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됐고 유도분만을 촉진하는 ‘옥시토신’을 투여받았다. 옥시토신을 맞은 산모의 경우 태아의 심박동 수가 떨어지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산모에게 산소를 공급하거나 응급 제왕절개술을 해야 하므로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일 당직 의사로 근무하던 A씨는 오전1시 30분부터 옥시토신을 맞은 B씨의 자궁 과다 수축 빈도와 압력을 측정하지 않았다. A씨는 이어 같은 날 오전 5시쯤 간호조무사로부터 “아기가 잘 안 내려오고 산모가 너무 힘들어해 지쳤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분만 2기’ 시점으로부터 2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며 분만실에 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신 간호조무사에게 “30분 동안 힘주기를 더 하면서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30분 뒤 A씨가 분만실에 갔을 때는 이미 전자 태아 감시장치 모니터에 나타난 태아 심박동 수가 이미 크게 떨어져 ‘태아곤란증’이 의심되는 상태였으나 여전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6시 5분께 간호조무사로부터 “태아 심박동이 없다”는 긴급호출을 받고 분만실에 다시 간 A씨는 ‘흡입분만’으로 태아를 자궁 밖으로 꺼내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살리지 못했다.
재판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태아의 이상 상태가 확인된 시점에 제왕절개 등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황 판사는 “당직 의사인 피고인은 주의를 기울여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관찰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에게 구체적으로 관찰을 지시했어야 했다”며 “필요한 조치를 소홀히 한 업무상 과실뿐 아니라 그 과실과 피해자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고 피해자의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주치의가 아닌 당직 의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산모와 태아의 경과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과거 비슷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의사가 1심에서 금고8개월을 선고받았다가 산부인과 의사들의 집단 반발을 직면한 바 있어, 이번 판결의 향배에도 관심이 쏠린다.
40대 의사 B씨는 2014년 11월 인천 한 산부인과에서 독일인 산모 C씨의 분만을 돕던 중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5차례나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 방치해 심정지로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이 B씨에게 금고 8개월을 선고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의 책임을 의사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의사 1000여명이 참가한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를 열어 반발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1시간 30분가량 태아의 심장박동 수를 측정하지 않은 과실은 있다”면서도 “소규모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피고인이 제왕절개를 하기까지 수술 준비에만 1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심박수를 제대로 측정했더라도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망원인과 과실의 연관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