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 내려갈 때까지 다시 재라” 콜센터, 방역지침 유명무실

입력 2021-05-17 15:11
17일 서울 종로구 한 회의실에서 직장갑질119 주최로 열린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노동환경 심층 면접조사 발표회’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170여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단 감염을 계기로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콜센터 예방지침’을 발표했지만 1년이 넘도록 현장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은 발열 체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은행과 카드사, 배달앱 등에서 종사하는 상담사 13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 근무 현장에서 감염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17일 지적했다. 이날 발표 사례 중에선 발열 체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상담사의 사례가 있었다. 은행 콜센터 직원 구모씨는 매일 출근할 때 회사에서 체온 검사를 받지만, 발열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별 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체온이 38도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회사는 귀가 조치는커녕 ‘다시 온도를 재라’고 했다”며 “체온이 내려가지 않자 다시 재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상담원들은 그대로 근무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 손해보험에서 170여명이 집단 확진된 것을 시작으로 콜센터 감염이 빈발하자 세 차례 ‘코로나19 콜센터 예방지침’을 발표했다. 재택근무를 활성화하고 휴식 시간 부여, 거리두기 준수, 작업장 분리하기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날 사례를 보면 정부 방역지침이 실제 현장에선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건물 내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공유조차 되지 않았다. 카드사 콜센터 상담사 배모씨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귀동냥으로 알게 됐는데 (한참이 지난) 주말에서야 검사하도록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배씨가 항의하자 회사 관계자는 “그렇게 (감염이) 걱정되면 휴가를 쓰라”고 윽박질렀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한 뒤, 직장 내 전파가 우려돼 연차휴가를 사용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는 응답도 있었다.

재택근무 상황을 감시 당한 경우도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 특정 시간을 띄우는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20분 안에 사진을 찍어 보고하지 않으면 상담사들은 ‘미근무’로 처리됐다. 재택 근무가 장려되지도 않았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2.5단계 방역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 재택근무를 한 사업장은 조사 대상 13곳 중 3곳에 불과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상담사들의 업무형태 조정권, 휴식 청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