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강제추행을 당한 뒤 가해자와 둘이 시간을 보내는 등 ‘피해자다움’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해선 안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12월 강원도의 한 콘도에서 잠든 B씨의 몸을 여러차례 만졌다. 이후 A씨는 입대했고, 제대 후 A씨를 만난 B씨는 당시 일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B씨는 A씨가 다른 이에게 당시 사건을 말한 것을 알게 됐고, 2019년 7월 A씨를 고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상호 간 스킨십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와 2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대한 취업 제한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는 증거들에 의해 추행 행위가 인정됨에도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모습까지 보이는 등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사건 발생 이후 A씨와 사진을 촬영한 점, 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신 점, 사건 발생 2년이 지나 고소한 점 등을 이유로 “피해자의 태도는 강제 추행을 당한 피해자의 반응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건 이후 B씨가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진 촬영과 관련해 “피해자가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것으로 생각해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단둘이 술을 마신 것과 관련해서도 “B씨가 A씨로부터 해명을 듣고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며 “피해자로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