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으로 판단 안돼”…입대 전 동기 성추행, 대법서 재반전

입력 2021-05-17 10:47 수정 2021-05-17 12:41

성추행 피해자가 가해자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고 해서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A씨의 준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6년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놀러 간 숙소에서 잠든 대학 동기 B씨를 강제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A씨와 B씨가 강제추행이 있은 뒤에도 친구관계를 유지한 점, B씨가 A씨와 단둘이 만나 술자리를 가지기도 한 점 등을 둘러싼 해석이 달랐다.

1심은 “A씨는 증거들에 의해 추행 행위가 인정됨에도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모습까지 보인다”며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2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하지만 2심은 B씨가 추행 뒤에도 A씨와 친구관계를 유지한 점, 범행으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야 고소한 점, 진술이 일부 부정확한 점 등을 들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다움’을 기준으로 판단을 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당시 대학 친구들과 함께 A씨의 입대 전 기념으로 스키여행을 갔고 함께 숙식했다”면서 “이러한 정황과 관계를 감안하면 피해자로서는 추행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A씨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자연스러울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는 사건 발생 후 A씨와 단둘이 술을 마셨던 것에 대해 ‘해명을 듣고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며 “피해자의 이 같은 행동은 친하게 지냈던 A씨로부터 잠결에 추행을 당한 피해자로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범행 당시엔 문제 삼지 않다가 뒤늦게 고소를 한 데 대해서도 “A씨는 사건 발생 직후 입대해 피해자가 그를 마주칠 일이 없었다”며 “피해자가 가정에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한 사정을 감안하면 2년이 지나서야 고소에 이른 경위를 수긍할 만하다”면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