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 탈 쓴 ‘젠더 혐오’ 전쟁의 역사[이대남은 왜]

입력 2021-05-17 06:05 수정 2021-05-17 06:05
<시리즈>
1. 남혐 말하는 이대남, 그 목소리의 정체
2. 그들의 진짜 속마음
3. 커뮤니티 젠더 전쟁
4. 정치권의 이대남 사용법
5. 반복되는 젠더 혐오, 진짜 문제는

4·17 재보선 이후 20대 남성(이대남)이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남성을 향한 ‘역차별’ ‘혐오’ 등이 토론장 이슈로 떠올랐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상의 ‘남성을 향한 혐오’(남혐) 표현 등을 색출, 공격하고 나서면서 ‘혐오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같은 온라인 공간이 본격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 ‘젠더 갈등’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관찰됐다. 차이가 있다면 초창기 주로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혐오’(여혐)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최근 남혐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이 두드러진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일까. 남성을 향한 혐오나 역차별이 커졌기 때문일까.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등장한 온라인상의 ‘젠더 갈등’ 주요 사건을 통해 여혐을 거쳐 남혐이,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이 촉발되고 변화해 온 과정을 짚고, 이른바 ‘이대남’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풀어본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어떻게 ‘젠더 갈등’의 장이 됐나

주로 스포츠, 게임, 자동차 등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모여 성장한 한국의 주류 온라인 커뮤니티는 남성 이용자 중심의 성격이 강했다. 이들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상품화하고 조롱, 혐오하는 콘텐츠나 표현은 만연했다. 여성 관련 이슈에 툭하면 등장했던 ‘꼴페미’라는 비난, ‘된장녀’ ‘김치녀’ 등의 조롱적 표현은 2000년대 중반 커뮤니티와 포털 댓글 등을 통해 유행어처럼 자리 잡았다. 2005년 헌법재판소 호주제 폐지 판결 등도 여성을 향한 공격의 요소로 작용했다. 2009년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oser)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은 사건은 최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혐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혐오가 만연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성 혐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10년대 들어서면서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메르스 의심환자인 한국인 여성 2명이 홍콩에서 자가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대표적인 남초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이기적인 김치녀” 등 여성 혐오성 글이 올라왔다. 이에 여성 이용자들이 ‘김치녀’를 ‘김치남’으로 바꿔 부르며 반박, 대응했다. 갤러리는 서로를 비방하는 글로 도배됐다. 당시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은 ‘김치녀’라는 표현은 놔둔 채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금지했고 남녀 이용자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이때 이곳을 떠난 일부 이용자들이 만든 커뮤니티가 대표적인 여초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다.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존 온라인 커뮤니티가 남성 중심적 문화가 강했다. 2010년대 들어 여성들의 대학 진학, 사회적 활동과 함께 온라인 활동도 일반화되면서 온라인 상에 만연한 여혐에 대한 반발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판 혐오, ‘강남역 살인 사건’…폭발한 ‘미러링’

메갈리아는 실제 일베(일간베스트) 등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김치녀’는 ‘한남충’(한국 남성을 지칭·비하하는 용어)으로, ‘맘충’은 ‘애비충’(아버지+벌레의 합성어)으로 맞불을 놓는 식이었다. 이른바 ‘미러링’(문제 행동을 따라함으로써 당사자가 잘못을 자각하도록 하는 일)의 등장이다.

서초동 주점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 현장에 남성혐오 쪽지가 붙어 있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그러던 중 ‘젠더 전쟁’에 불을 붙인 사건이 발생한다. 2016년 5월 17일 서초동에 있는 노래방 건물의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당시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강남역 앞에서 피해자를 추모했다. 이 사건은 여성들에게 혐오가 실질적 위협,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여겨졌다. 강남역 주변은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로 가득 찼다. 고인에 대한 추모는 ‘여혐 범죄’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여자라 살해당했다’ ‘너는 남자라 살았다’ 등과 같은 반발적 감정은 ‘남성들로부터 당한 여혐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는 ‘미러링’ 폭발로 이어졌다.

메갈리아에서 파생돼 생겨난 여초 커뮤니티인 워마드 등에서 남성들을 향한 ‘미러링 공격’은 격해지고 거칠어졌다. 이에 남성들도 반격에 나섰다. 일베,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은 강남역 추모집회에 맞서 남녀 혐오를 반대한다는 시위를 열고, 일부 회원은 추모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화환을 보내 분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후 워마드 등에서 남자 화장실 몰카 유포 사건, 남아 폭행 인증글 등 극단적인 사례까지 등장하자 메갈리아식 여성들의 움직임이 공격의 대상이 됐다. 남성 커뮤니티에서 ‘메갈’은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를 나타내는 용어로 통용되고, ‘안티 페미’ 목소리가 힘을 받았다.

넥슨사 게임 성우 퇴출로 이어진 ‘메갈’ 논란

2016년 7월 넥슨사 게임 ‘클로저스’ 캐릭터를 연기한 여성 성우 퇴출 사건은 메갈리아 등에 대한 거부감을 전면에 드러냈다.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 게임에서 교체된 성우 A씨. 온라인 커뮤니티

당시 성우 A씨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님이 필요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이 티셔츠가 메갈리아를 후원한 이에게 준 것임이 알려지면서다.

게임의 주 소비층인 10, 20대 남성들은 ‘남혐을 조장하는 메갈리아에 대한 후원은 부적절하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용자들은 성우 교체를 요구하며 불매운동을 벌였고, 넥슨은 결국 다음 날 A씨와 계약을 해지했다며 성우 교체를 발표했다. 당시 몇몇 웹툰 작가·만화 번역가들이 A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레진코믹스 회원들의 집단탈퇴 사태를 촉발하기도 했다. ‘노동권 침해’라며 넥슨을 비판하는 논평을 낸 정의당에선 당원들이 연쇄 탈당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최근 GS25 캠핑 행사상품 광고에 메갈리아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의 이미지가 들어 있다며 불매운동이 벌어진 사건을 연상시킨다. 4·7 재보선 이후 이대남이 집중 조명되면서 남혐이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새삼 등장한 현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남초 커뮤니티 등은 다른 기업 홍보물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색출해내고, ‘허버허버’(급하게 음식을 먹는 남성의 모습) ‘오조오억’(남성의 정자 개수를 의미) 등 남혐 용어를 사용한 방송사, 기업에 항의하며 실력행사를 벌이고 있다.

‘미투 확산’에…남성들 “잠재적 가해자 돼” 불만

2018년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폭로한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된 ‘미투운동’(Metoo·나도 당했다)도 또 다른 결집을 불러냈다. 연예계, 문화계부터 정치권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성폭력 고발이 이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한 학생들의 ‘스쿨 미투’도 이어졌다. 미투운동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연대하는 가운데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전체가 가해자로 취급받는다”는 거부감이 표출됐다. 미투를 선언한 이에 대한 ‘2차 가해’ 여부를 놓고 공방도 이어졌다. 남성들 일부는 성폭력 무고에 대비한다며 ‘펜스 룰’(여성과 접촉 자체를 피함)을 펼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서울 이수역 인근 한 주점에서 발생한 남성과 여성 일행 간 다툼은 ‘성 대결’ 구도가 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여성 측이 ‘여성 혐오로 인한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다. 반면 남성 측은 ‘여성들이 먼저 남성 혐오적 욕설을 했다’고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워마드 등 여초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 청와대 답변까지 받았다. 이 사건은 최근 대법원 판결을 통해 남성과 여성 모두 서로를 모욕하고 쌍방 폭행한 사안으로 결론 내려졌다. 남성 누리꾼들은 ‘쌍방 폭행이 여성 혐오 범죄로 둔갑된’ 이 사건이 ‘남성의 집단 목소리’ 필요성을 느끼게 한 계기 중 하나로 꼽는다.

온라인상 혐오 갈등, 표면적 현상…10대 ‘혐오 학습’ 우려도
정치권 일각은 이런 남성들의 목소리가 지난 4·7 재보선에서 20대 남성들의 표심에 드러났다고 해석하고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운동과 현 정권의 여성 편향 정책에 쌓여 있던 반감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별을 둘러싼 갈등과 혐오 현상 자체보다는 혐오가 표출된 배경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고 꼬집는다. 말과 글로 갈등을 빚는 온라인 공간에서 남녀 목소리가 비등하거나 혹은 어느 한쪽이 높아 보이는 것이, 현실 사회에서 지위를 설명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폭력과 성차별 등의 실제 위협이나 부조리에 반발하며 터져 나온 분노의 목소리와 ‘상대가 싫다’는 감정의 표출인 혐오는 구분해 봐야 해결할 문제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표면화된 성별 혐오와 갈등 등을 10대 이하 세대가 그대로 학습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자신만의 생각을 갖추지 못한 채 ‘꼴페미’ ‘한남’ 등과 같은 표현으로 성 인식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갖기 전에 온라인을 통해 학습한 혐오의 언어나 구분이 자아가 돼버릴 수 있다. 이대남이나 남혐 등 표면적인 규정이 나쁜 이유”라면서 “이런 부분을 어떻게 소통해 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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