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사과’ 이선호 사고 원청, 사과 전 작업재개 요청했다

입력 2021-05-14 11:12 수정 2021-05-14 11:15
12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입구에서 주식회사 '동방' 관계자들이 지난달 발생한 고(故) 이선호 씨의 산재 사고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평택항 부두에서 발생한 대학생 고(故) 이선호씨의 사망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을 받은 원청 업체 ‘동방’이 대책 마련 없이 당국에 작업 재개를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이번 사고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부 평택지청은 지난달 22일 이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300㎏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뒤 현장에서 구두로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조사에 착수했다.

동방은 사고 발생 12일 만인 이달 4일 노동부에 작업 중지 명령 해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사업장의 전반적인 안전 조치 계획과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등이 부족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방이 제대로 된 안전 대책도 없이 작업 재개를 요청한 셈이다.

동방은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원청의 책임도 다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부가 사고 직후인 지난달 26~27일 진행한 사고 현장 감독 결과에 따르면 동방은 사업장 순회 점검 등 산재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실한 점도 드러났다. 사업장 관리·감독 책임자는 컨테이너 날개 전도를 막기 위한 사전 점검 등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노동자가 낙하물에 맞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통로도 없었다. 노동자에게 안전모 등 보호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씨 역시 안전모도 없이 작업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 연합뉴스

노동부는 현장 감독 과정에서 적발한 법규 위반 10건에 대해 사법 조치하고 7건에 대해서는 모두 1억9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아울러 산안법 등 노동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컨테이너 해체 작업과 같은 위험 작업은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진행돼야 하지만, 작업 계획서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는 평택항을 포함한 전국 5대 항만의 컨테이너 하역 사업장을 대상으로 긴급 점검에도 착수했다. 이번 점검에서 컨테이너 하역 사업장 전반의 안전관리 체계를 점검할 예정이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가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있어야 하지만 배정돼 있지 않았고, 안전모 등 보호구도 지급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원청 업체인 동방은 지난 12일 오후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관계자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관리 소홀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며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다. 사고 발생 20일 만에 나온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사과의 대상이 유족이 아니고, 유족이 요구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은 빠져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과문의 내용과 발표 일정 또한 유족과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일하러 갔다가 일 마치고 집에 가는 사람들은 재수가 좋은 사람들”이라며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은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게 오늘날 산업 현장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이 사건의 모든 원인은 원청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인건비를 좀 줄이겠다고 적정한 안전요원을 투입하지 않은 것”이라며 “많은 돈도 아니고 하루 10만원만 들였으면 내 자식은 죽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날 밤 빈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있어야겠지만 제발 이제는 이런 사고를 끝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 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청와대 제공)

연합뉴스(청와대 제공)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