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직후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조직문화 인식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과거보다 ‘피해자 책임론’이 높아졌고, 여성이 보조적 역할로 인식된다는 응답이 높아지는 등 부정적인 조직 내 성평등 상황이 드러났다. 특히 서울시 20대 여성 공무원 77.8%는 조직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해도 서울시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 성평등 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 과제’ 연구에서 서울시 공무원 6385명(남성 3899명, 여성 2486명)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 공무원 성차별·성희롱 등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박 전 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직후인 지난해 8월 실시된 실태조사로 내용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이 체감하던 조직 내 성평등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선 성희롱의 원인을 위계적 조직문화로 인식하는 정도가 2018년 2.4점에서 2020년 2.85점(4점 만점)으로 높아졌다. 성별·연령대별·근무처별·직급별 구분 없이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위력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다수 문항에서 열악한 조직 내 성평등 상황이 나타났다. 특히 ‘피해자 책임론’이 높아졌다. ‘성희롱은 옷차림, 적극적 거절 의사 표현 부족 등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답변은 2018년 1.81점에서 2020년 1.83점으로 소폭 상승했다. 50대 이상, 근무기간 20년 이상, 5급 이상인 경우 피해자 책임론이 높았다.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피해자 책임론이 낮았지만, 고위직 여성의 경우 반대였다. 5급 여성이 2.07점으로 가장 높았고, 4급 이상이 2점으로 뒤를 이었다. 오히려 4급 이상 남성 공무원은 1.72점이었는데, 이는 7급 이하 여성 공무원과 함께 가장 낮은 수치다. 연구팀은 “중간관리직 이상, 장기근속 여성 공무원의 보수적인 태조는 하위직 여성 공무원으로 하여금 여성 관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보조적 역할에 머문다는 응답도 높아졌다. ‘남성은 핵심 업무, 여성은 보조 업무’ 문항에는 2018년 1.36점에서 2020년 1.75점으로 상승했다. 특히 여성은 1.4점에서 2점으로 대폭 상승했다. ‘특정 성별에 대한 선호 및 부서 진입장벽’ 문항도 2.29점에서 2.34점으로 상승했다.
‘여성 직원이 업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요구받을 때가 많다’는 응답 역시 1.67점에서 1.96점으로 상승했다. 여성은 1.76점에서 2.34점으로 급등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1.64점에서 2.28점, 30대는 1.63점에서 2.21점으로 대폭 상승했다. 반면 50대 이상은 1.71점에서 1.74점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손님 응대를 여성 직원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 문항에서는 성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여성의 경우 2018년 2.14점에서 2020년 2.35점으로 높아졌지만, 남성은 1.76점에서 1.61점으로 낮아졌다.
서울시가 성희롱 사건을 적절히 처리할 것이라는 응답은 56.4%였다. 하지만 여성 공무원들은 38.6%로 남성(67.8%)에 비해 낮은 신뢰를 보였다. 특히 20, 30대 여성은 각각 22.2%, 27.8%로 조직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연구팀은 “조직 내에서 성희롱 사건을 접했을 경우 가해자에게 반감을 느끼는 경우보다 조직에 실망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개인에 대한 징계로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계기로 공식화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성차별, 성희롱 근절 대책’ 발표에서 “성차별·성희롱 인식 실태조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조직문화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진단 및 컨설팅으로 위계적·온정주의적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