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악성 임대사업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서로 상황을 공유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악성 임대사업자의 재산 목록처럼 보증금 반환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며 데이터베이스도 구축 중이다. 향후 수사에 활용될 수 있는 악성 임대사업자들의 개인 정보와 사기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 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 모녀 전세 투기단’의 피해자인 심모씨는 지난 11일 피해자 오픈 채팅방에 세 모녀의 재산 목록 중에서 확보한 200여건을 공개했다. 심씨는 세 모녀 명의의 부동산 주소, 건축물 명칭, 소유권 변동일 등을 공유한 후 “피해자 연락처를 기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심씨는 “형사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결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심씨는 그동안 세 모녀를 상대로 홀로 법적 대응을 진행해왔다. 세 모녀 명의의 빌라에서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던 심씨는 전세 만기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당연히 보증금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새로 구한 신혼집의 계약금까지 치른 터였다. 심씨는 결국 가족 명의의 신용 대출까지 모두 끌어모아 잔금을 겨우 치렀다.
그는 집 주인이 연락을 피하는 등 보증금 반환 의사가 없다고 보고 임대차보증금반환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8월 승소했다. 하지만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다. 승소 이후 재산조회를 통해 세 모녀 명의의 부동산 목록 200여건을 확보했을 뿐이다. 심씨는 형사 소송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다른 피해자들의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국민일보 보도를 계기로 심씨는 피해자들과 공동 대응에 나설 준비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사기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망(속일 의도가 있다고 보이는) 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중요한데, 개인 간의 임대차 계약서로는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은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사례”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심씨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물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빌라 분양회사 관계자, 건축주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공유하면서 관련자들의 신상을 추적하고 있다. 또 아직 관련 사실을 모르고 있는 세입자들을 위해 안내문도 써 붙이며 공동 대응에 나설 이들을 모으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