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항만에서 일하는 건 누가 죽을지 모르는 ‘러시안룰렛’ 같다고 말합니다. 안전모와 안전화 등 개인보호장구를 잘 갖춰도 철판 덩어리가 나뒹구는 곳이라 사고가 나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환경이에요.”
20년이 넘은 베테랑 항만 노동자 김모(50)씨는 12일 항만노동자들의 일상을 총알 한 개만 장전해 쏘는 목숨을 건 내기 ‘러시안룰렛’에 비유했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사망한 대학생 이선호(23)씨 소식을 들은 후 동료의 죽음이 떠올라 괴로웠다는 그에게 항만노동자의 일상에 관해 들어봤다.
김씨는 선호씨가 무게 300㎏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목숨을 잃은 것은 위험한 작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여년 전 말단 노동자에서 시작해 현재는 부산항에서 부두 작업반장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장 인력의 안전을 옆에서 챙기는 업무를 담당한다. 선호씨 아버지 이재훈(62)씨도 김씨와 같은 작업반장이었다. 김씨는 “내 아이도 비슷한 나이인데, 선호씨 소식을 들으며 남 일 같지 않았다. 얼마나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질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현장은 늘 위태롭지만 안전이 자주 무시되는 곳이다. 수백㎏ 무게의 컨테이너들이 수시로 머리 위로 옮겨지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안전이 뒤로 밀리기도 한다. 그는 “급할 땐 신호수 없이 익숙한 대로 작업을 해도 괜찮다고 여기는데, 얘기해도 잘 고쳐지지 않다가 사고가 나서야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고(故)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선호씨 역시 위험 상황을 알려줄 신호수가 없어 사고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그간 부두를 지키면서 동료 세 명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중 20년 전 김씨 바로 옆에서 숨진 동료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사고 내용 자체를 언급하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그는 “그때 동료의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박혀있다”며 “살아남은 사람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씁쓸해했다. 사고 때마다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사고는 반복됐다.
그는 특히 선호씨처럼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 현장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잠시 일하러 현장에 오는 아르바이트생들은 회사로부터 위험한 지점을 제대로 전달받거나 충분히 안전 교육을 받기 어렵다”며 “항만에서는 근무하는 위치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위험한 업무보다 보조 업무를 시켰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의를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의미다.
숱한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김씨가 바라는 건 실질적인 대책이다. 수시로 바뀌는 작업 현장마다 신호수나 작업지휘자를 배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아예 부두 안에 컨트롤타워를 세워달라는 게 대표적이다. 폐쇄회로(CC)TV로 현장을 지켜보다가 위험이 포착되면 사이렌을 울리거나 작업반장에게 즉시 알리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또 개선 요구를 묵살해 사고가 난 곳에 대해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한층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의 책임을 지는 주체가 명확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오현수 한국항만연수원 교수는 “현재는 항만 내 다양한 인력들의 근로계약관계가 복잡하게 꼬여있어 안전 관리의 주체도 일원화돼 있지 않다”며 “부두 운영사가 컨트롤타워가 돼 통합안전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