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저임금, 아시아 1위? OECD 꼴찌? [국민적 관심사]

입력 2021-05-12 11:35 수정 2021-05-12 13:51
국민일보DB

“한국 최저임금은 아시아 국가 중 1위.”(전경련)

“한국 최저임금은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민주노총)

한국의 최저임금은 높은 수준일까. 어느 나라와 비교해야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절차가 시작되면서 노동계와 재계의 장외 샅바싸움이 팽팽하다. 재계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1일 “한국의 최저임금은 아시아 국가 중 1위”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한국을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 최저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정반대 주장을 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가장 높은 수준’인가, 아니면 ‘가장 낮은 수준’인가. 한국의 최저임금을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는 게 타당한가, OECD 회원국과 비교하는 게 맞는가. [국민적 관심사]는 두 단체의 주장 중 무엇이 더 사실에 부합하는지 따져봤다.

같은 날 정반대 주장 편 전경련과 민주노총

우선 두 단체의 주장을 뜯어봤다. 전경련은 “2019년 현재 한국의 절대 최저임금은 구매력 기준(PPP)으로 2096달러, 달러 환산으로 1498달러(약 167만원)다. 아시아 18개국 중 3위”라면서 “제조업 비중이 낮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할 경우 실질적 1위”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 수치가 “한국 대비 국내총생산(GDP)이 3.1배, 1인당 GDP가 1.3배인 일본을 추월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경련 보도자료 중 일부

민주노총 주장은 다르다. 민주노총은 5인 이상 사업체의 정규직 통상임금에서 최저임금(월 환산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따졌다. 즉, 각 나라의 최저임금으로 한 달을 일해 받는 급여가 그 나라 정규직 평균임금의 몇 %인지를 계산한 것이다. 월 환산액 기준이므로 여기엔 주휴수당이 포함된다.

민주노총 보도자료 중 일부

그렇게 살펴보니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미국을 제외하고 OECD에서 가장 낮더라는 게 민주노총의 논리다. 민주노총은 “2019년 5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의 통상임금 기준으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중은 34.5%에 불과하다. 연방 최저임금 자료만 공개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경련,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최저임금 높아 보이게 해

어떤 주장이 더 믿을 만할까. 양측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두 주장을 모두 고려해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을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경련 주장은 한국과 경쟁하는 나라들을 비교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하지만 한국의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높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시아권 국가 가운데 우리와 경쟁관계에 놓인 국가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 대만이 대표적이다. 임금이 가격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평가하려면 아시아권 국가들과 비교해야 한다.

다만 비교 대상국이 한국보다 소득 수준이 현저히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국의 최저임금이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성 교수는 “아시아권 국가 중 소득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가와의 비교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라고 짚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아시아권 국가 가운데 소득 수준이 매우 낮은 나라가 포함돼 있어 비교하기 민망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주장, 의미 있으나 한국적 현실 고려하면…

민주노총 주장은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OECD 회원국과 비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이 아닌 ‘5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정규직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중을 살핀 것이라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을 낮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한국은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가 심한데, 이를 반영하면 해당 수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정규직 통상임금 수준을 가지고 최저임금 수준이 낮다고 얘기한다면, 우리 정규직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어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기업규모에 따라서 임금격차가 워낙 큰 데다 최저임금 적용은 5인 이하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OECD 홈페이지 캡처

다만 이는 국제 비교에 따르는 불가피한 한계다. OECD 자료 자체가 통일된 기준으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자료에서 EU 회원국은 1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만 모든 사업체 노동자를 기준으로 삼으면 한국 최저임금이 아주 높아 보일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을 모두 고려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종합하면, 전경련은 한국과 경쟁 관계에 놓인 아시아권 국가와 비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우리 최저임금 수준을 높아 보이게 힌다. 민주노총은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OECD 회원국과 비교했지만, 기업 규모나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 격차가 큰 한국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양측 주장의 장단점을 두루 고려한 종합적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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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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