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압도적 기소 권고가 나오면서 반격 카드가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안팎에서는 “피고인 서울중앙지검장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법무부가 직무배제 등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기소와 직무배제는 별도의 절차”라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이 지검장은 11일 오전 8시50분쯤 관용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정상 출근했다. 그는 평소 지하주차장으로 출근했지만 취재진이 주차장 입구에 몰려있자 정문 현관으로 들어갔다. 이 지검장은 보고를 받는 등 통상적인 업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지검은 조만간 이 지검장을 기소할 방침이다.
전날 수사심의위에는 외부 전문가 13명 중 8명이 기소 의견을 냈다. 수사심의위가 수사와 기소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거취 압박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통상 검찰 고위 간부가 비위 혐의를 받을 경우 직무배제 등 인사 조치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2017년 이른바 ‘돈 봉투 만찬’ 사건이 논란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감찰국장에 대해 즉시 감찰을 지시했었다. 이들은 문 대통령 지시 다음날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감찰 대상자는 사직 처리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사표가 수리 되진 않았다. 이들은 고검 차장검사로 전보 조치된 후 기소됐고, 돈 봉투 사건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지검장은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만큼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의를 표명해도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규정상 기소될 경우 의원면직(사직)될 수 없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지검장이 기소되면 징계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피고인 신분인 서울중앙지검장이 사건 결재를 받는다는 건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 지검장의 경우 수사심의위의 기소 권고로 직무 유지 명분이 더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아직 직무를 유지하고 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정 차장 검사에 대한 기소가 적절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직무배제를 하지 않았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지검장의 경우에는 수사가 잘못됐다고 트집잡기도 어렵게 된 것 아니냐”며 “심의위가 오히려 퇴로를 막은 것 같다”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지검장 거취를 묻는 질문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관련된 수사 과정에 전반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의 절차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범케이스가 왜 하필 김학의 사건이냐고 되물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에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서는 법무부가 절차적 정의를 강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둘을 비교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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