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여경 무용론’ 논란과 현직 남성 경찰관들의 단체대화방 여경 성희롱 사건에 휩싸인 경찰이 스스로 성평등 분야에 ‘미흡’ 평점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과 2020년 2년 연속 평가가 ‘미흡’ 수준에 머물렀는데, 개선 필요성을 스스로 인지하고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이 지난달 발간한 ‘2020년 자체평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은 ‘경찰 정책의 성 주류화 실현 및 성평등한 조직문화 정착’ 과제에 ‘미흡’ 평점을 매긴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보고서에서 경찰청은 낮은 평가를 한 이유로 “소속 기관에서 양성평등 정책담당을 위한 인력을 선발하지 못했다”며 “성평등 교육 전문강사 인력을 활용하지 않았고, (사이버교육으로 진행된) 교육 모니터링도 적절하게 실시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매년 주요 과제를 선정해 스스로 평가한 보고서를 공개하는데 평가 항목은 ‘매우 우수’ 부터 ‘부진’ 등 7단계다. 경찰이 매긴 ‘미흡’은 7단계 중 2번째로 낮은 평가다. 경찰청은 2019년에도 성평등 관련 과제(조직 내 성평등 가치 제고)에 똑같이 ‘미흡’ 평가를 내렸다.
외부에는 정반대 평가를 공개하기도 했다. 경찰청은 ‘2020년 성평등 교육’에 대해 “성원의 92%가 수료했고,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24점을 기록했다”는 보도자료를 지난달 배포했다. 성평등 교육에 대해 ‘미흡하다’던 경찰 내부 평가가 홍보 자료에서는 ‘만족도가 높았다’라고 바뀐 것이다.
2년 연속 평가가 개선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은 “양성평등 전문 인력을 뽑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2년 연속 담당자 채용이 이뤄지지 않은 경기북부경찰청 관계자는 “지원자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최근 “여경기동대는 밤샘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내부 불만이 나오면서 논란에 휩싸였고, 김창룡 경찰청장이 직접 “여경기동대의 역할과 임무가 약간은 다르다”고 해명하는 곤욕을 치렀다. 또 현직 남성 경찰관들이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동료 여경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내부에서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고강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조직은 남성이 절대 다수여서 젠더 갈등에 취약할 수 있다”며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평등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전문 강사 자질 강화, 인력 확충 등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