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사고를 낸 운전자가 차량을 그대로 두고 도주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황상 음주운전을 의심받을 상황에서 ‘일단 도주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일부 운전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40대 A씨는 지난 3월 31일 오후 9시40분쯤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제3경인고속도로 고잔요금소에서 모하비 차량을 몰다가 진입로 구조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A씨는 당시 차량을 버리고 도주를 했으며, 경찰이 차적 조회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 뒤 출석을 요구하자 사고 후 약 13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당황스럽고 몸도 불편해서 현장을 이탈했다”면서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이 차량 블랙박스와 CCTV 영상을 분석해 A씨의 사고 전후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씨의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났다.
위드마크 공식(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수사기법)을 적용한 결과 A씨의 음주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최소 면허 정지 수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입건한 A씨에게 음주운전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운전자 B씨(30)가 자정을 넘어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도로에서 투싼 차량을 몰다가 주차된 승합차를 들이받고 달아나기도 했다.
B씨는 사고 직후 차량에서 내린 뒤 아무 조치 없이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사고 발생 11시간 만에 변호인과 함께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B씨에게선 면허 정지 수준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왔다.
지난 6일에도 무면허인 C씨(39)가 인천시 연수구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그랜저 차량을 운전하다가 23t 화물차를 들이받고 차량을 방치한 채 현장을 벗어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C씨는 과거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씨의 사고 전후 행적을 파악해 정확한 도주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A씨 등은 모두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고 후 겁이 났다” 혹은 “당황스러웠다”며 현장 이탈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운전자들의 이 같은 행태는 더 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 직후 적절한 조치 없이 현장에서 달아날 경우 뺑소니 요건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사고 시 운전석에서 내려 상황을 살핀 뒤 119나 112 신고를 통해 구호 활동을 펼쳐야 하며 이후 자신의 연락처 등 인적 사항을 제공해야 한다.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교통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운전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도주했을 때는 음주운전을 비롯한 무면허, 대포차 운전 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당장 상황을 모면하려다가 혐의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면 추후 재판 과정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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