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넋 기린 ‘민주화 춤꾼’… 이애주 별세

입력 2021-05-11 00:16 수정 2021-05-11 09:58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춤으로 저항한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 겸 경기아트센터 이사장(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이 10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유족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이날 오후 5시20분쯤 세상을 떠났다. 유족 측은 지난해 10월 말 암 진단을 받은 고인이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다섯 살 때부터 춤에 소질을 보였다. 54년부터 63년까지 김보남 선생, 70년부터 89년까지 한영숙 선생을 사사했다. 승무, 검무 등을 골고루 익혔고 학창시절 각종 대회에서 입상했다.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와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동대학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입학해 졸업했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가 됐다.

그해 서울대 교수로 부임, 26년간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2013년 정년퇴직한 뒤 명예교수가 됐다. 한국전통춤회 예술감독, 한영숙춤보존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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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70년대 대학가 민중문화운동의 첫 세대로 통한다. 일제 용어로 통하는 ‘무용’보다 ‘춤’을 사용했다.

80, 90년대엔 ‘민중의 한’을 춤사위로 풀어냈다. 87년 6월 서울대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흰 베옷을 입고 ‘바람맞이’ 춤을 췄다.

같은 해 7월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장에선 ‘한풀이춤’을 췄다. 이 학교 정문에서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재현하는 길닦음 춤도 펼쳤다.

또 99년부터 2012년까지 맨발로 한반도의 상징적 장소를 찾아다니며 사방팔방으로 터를 벌리며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터벌림’ 춤을 맨발로 췄다.

이 밖에 생전에 지리산 보호 등 환경보호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사회를 모르면 춤을 출 수 없다”며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와 함께 숨 쉬는 예술을 강조했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경기도예술단의 역량을 집약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면서 “평생 춤과 함께해 온 만큼, 전통춤 명맥을 잇는 데 힘써 온 경험을 쏟겠다는 일념으로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까지 오르는 열의를 보였다”고 전했다.

만해대상 수상(예술부문·2003), 옥조근정훈장 대통령상(2013), 제7회 박헌봉 국악상(2017),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2019) 등을 받았다.

고인의 제자 40여명은 오는 11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내에서 추모 공연을 진행하며, 12일 같은 시간에는 같은 장소에서 민족예술인 60여 명이 추모 공연을 이어간다.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조문은 11일부터 가능하다. 유족은 동생 이애경(한국무용가)씨와 제부 임진택(판소리 명창)씨 등이 있다. 발인은 13일 오전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