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국내 암호화폐 전문가의 심경은 복잡다단하다. 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코인 가격 상승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3년여 만에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지나친 투기 수요와 검증되지 않은 코인들이 관련 산업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센터 선임자문위원은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암호화폐, 블록체인은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서 기대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최근처럼 투기 수요만 몰린다면 관련 산업 생태계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거시 금융과 경기·금리 정책을 전문 분야로 하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최 위원은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발전포럼 자문위원단장도 맡고 있다. 그는 2018년에 발간된 ‘비트코인 레볼루션’의 저자이기도 하다.
먼저 암호화폐를 통한 금융 거래는 중개자 없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 체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최 위원은 전망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은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새롭게 가치를 저장·이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기존 금융 시스템은 과도한 수수료, 느린 거래 속도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모험 자본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도 한다. 대표적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해 초기 기업의 사업자금을 모집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가 있다. 최 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험 자산에 대한 대출 규제가 상당히 강화됐는데, 코인을 통해선 모험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알트코인(비트코인 제외 암호화폐)을 중심으로 한 투자는 ‘돈 놓고 돈 먹기’의 투기적 경향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암호화폐 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최 위원은 “현재 시장에 상장된 코인 종목 가운데 대다수가 제대로 검증 받지 않은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상황에선 개별 코인의 가격 상승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최 위원은 “암호화폐 발행의 원래 목적은 기존 제도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격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며 오르는 것보단 안정되는 게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암호화폐 투자 규제 필요성도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0일 보고서에서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가 불분명하고 정보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투기나 불공정 행위로 인한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선 가상자산의 성격이나 리스크를 명확히 인지한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관 부처, 정책 및 과세 방안, 투자자 보호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최 위원은 “일차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엄격한 상장 규정을 둬야 하고, 당국도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취급하는 사업자는 227곳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상당수가 제대로 된 사업 요건을 갖추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