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도 G7도 아세안도 손 놓은 100일…출구 없는 미얀마 내전 위기

입력 2021-05-10 17:32 수정 2021-05-10 17:46
지난 2월 16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벌어진 군사 쿠데타 반대 시외 도중 한 여성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11일(현지시간)로 100일째를 맞는 미얀마는 내전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말뿐인 성명만 내놓는 사이 미얀마는 ‘제2의 시리아’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2월 1일 선거부정을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킨 뒤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에 저항하다 군경 폭력으로 사망한 시민은 지난 7일 기준 774명에 달한다. 체포·구금된 인사도 5000명에 이른다.

국제사회는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을 규탄했지만 단합된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기엔 중국의 반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났다. 중국은 미얀마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워 ‘미얀마 각측이 적절히 해결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반대가 아니더라도 유엔 전체가 미얀마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에서도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이들은 “미얀마 군부는 비상사태를 끝내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권력을 즉각 복원하는 한편 아웅산 수치를 포함해 임의로 체포한 인사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군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미얀마가 속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아세안대로 따로 놀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지난달 특별정상회의에서 즉각적인 폭력 중단, 특사 및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 등 5개항에 합의해놓고도 2주간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시늉만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10일 “아세안 국가들은 미얀마 쿠데타 같은 사태가 자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내정 간섭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데타를 겪었거나 군사 정권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태국, 캄보디아를 비롯해 철권 통치를 펼치는 필리핀 등은 내정 불간섭을 내세워 미얀마 군부 제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아세안 의장과 사무총장이 다음 주 미얀마를 방문한다고 해도 군부를 상대로 얻어낼 것이 없을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 100일간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유혈 진압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엇박자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중국의 방관은 군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사회에 기대할 것이 없어진 미얀마 민주진영은 지난달 16일 소수민족 인사들이 포진한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했다. 이어 지난 5일에는 시민방위군을 창설해 사제 총과 폭탄으로 군에 맞서고 있다. 국민통합정부에 소수민족이 포함된 건 연방군 창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연방군 창설은 곧 내전 장기화를 의미하는 만큼 국제사회가 이제라도 단합된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