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주 52시간 미만 근무해도 스트레스 사망은 산업재해”

입력 2021-05-10 16:51

주 52시간 초과근무를 하지 않았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급성 심근경색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40여 시간을 근무해 고용노동부의 업무상 질병 기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업무상 스트레스가 사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다.

A씨는 1996년부터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 개발 업무를 하다 2018년 6월부터 팀장으로 보임돼 과다한 업무를 떠맡았다. A씨는 연구본부의 예산·인사·보안·기술기획·연구계획 등 업무를 총괄했고, 일상 업무 외에도 조직재구조화 업무 및 기술료 배분 업무를 수행했다. A씨는 2019년 4월 산길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급성 심근경색에 따른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난해 2월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킬 만한 업무 부담이 없었다고 판단해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처분을 했다. A씨의 유족은 “망인이 급성 심근경색 발병 하루 전까지도 업무를 수행했고 희소성망막염을 앓고 있어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급성 심근경색을 유발할 정도의 기존질환이나 위험인자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업무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와 직접적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을 유발했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연구개발만 해오던 A씨가 생소한 행정업무를 맡아야 했고, 대외기관까지 상대해야 했기에 상당한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가 인정된다”며 피로와 스트레스가 급성 심근경색 발병에 큰 영향을 줬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