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이 7%대에 머무는 등 속도가 더딘 가운데 접종 사실을 인증하는 배지나 스티커 같은 물품도 유독 한국에서는 외면받고 있다. 접종 완료된 인원이 적다는 이유가 크지만, 수급 불안정에 더해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 때문에 ‘백신 인증’ 호응이 덜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10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쇼핑 페이지에는 10여개 이상의 업체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실을 인증하는 배지, 팔찌, 스티커 등을 판매 중이었다. 기념품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 완료’ ‘I GOT MY COVID-19 VACCINE’ 등 다양한 문구가 적혀있다. 가방이나 옷에 착용하는 배지는 1개에 2000~3000원에 판매 중이다. ‘코로나 안심배지’란 이름으로 상표·디자인 특허까지 출원한 업체도 있다. 이 업체는 “실제 백신을 맞은 이들에게만 배지를 판매한다”고 홍보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두 달 전부터 배지를 팔았다는 A업체는 최근 2주 동안 동네 병원을 중심으로 주문을 접수하고 있지만 하루 5∼6개 수준으로 의료진들이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홍보 목적의 구매라고 한다. A업체 대표 김모(26)씨는 “미국에서 백신 접종 인증 제품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젊은 층의 관심이 적고 일반인이 주문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B업체 역시 “아직 판매가 부진하다. 일반인 접종이 이뤄지면 젊은 세대들이 많이 구매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백신 완료 기념품을 제작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호응이 낮아 배포를 두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전북 순창군은 지난 3월말부터 백신을 맞는 주민들에게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안심배지’를 나눠주고 있다. 보건의료원, 예방접종센터 등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4400여개가 배부됐다. 배지를 통해 타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접종도 장려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접종 거부자를 식별하는 차별의 도구’ ‘백신 강제쇼’라는 조롱 섞인 반응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고 배지를 받은 한 순창군민은 “맞으라 해서 맞은 건데 뭐하러 배지까지 차고 다니냐”고 냉소했다. 직장인 이모(29)씨도 “백신을 맞더라도 배지 같은 것은 안 할 생각이다. 굳이 드러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등에서 백신 인증 기념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베이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인증 물품이 등록돼 있다. 100여곳의 업체 가운데 10곳 이상은 꾸준한 배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구매자들의 후기도 많고, 칭찬 일색이다. 특히 의료진과 소방관 등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배지 사진을 올리며 인증 릴레이도 하고 있다.
국내 상황이 대조적인 것은 백신 접종에 대한 불안 심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백신을 거부할 권리나 불신은 집단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첨예하게 충돌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사회기관에 대한 공적신뢰를 높여나가면서 불신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