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용균과 꼭 닮은 죽음들… 현장서 스러지는 노동자들

입력 2021-05-09 17:17
故이선호 씨 빈소 사진(왼쪽)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대책위 제공


고(故) 이선호(23)씨가 지난달 22일 평택항 화물 컨테이너에서 300㎏ 철판에 깔려 숨진 지 2주가 지났지만 아버지 이재훈(62)씨는 여전히 아들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씨는 죽음의 진상을 밝힐 때까지 싸움을 이어나가겠다고 아들에게 약속했다.

이씨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며 “진상을 밝혀 사회에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원청 물류업체 ‘동방’ 측은 10일까지 진상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선호씨는 지난해 1월부터 아버지 이씨가 작업반장으로 있는 인력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고가 발생한 날도 이씨 부자(父子)는 함께 출근했다. 이날 오후 3시40분쯤 원청에서 컨테이너 날개 안전핀 제거 인력을 요청했고, 선호씨는 인부 A씨와 함께 4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때 원청 소속 지게차 기사가 “날개 구멍에 들어간 이물질을 빼달라”는 예정에 없던 지시를 했다. 이에 대해 지게차 기사는 관련 지시를 한 적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거절했지만 선호씨는 “시킨 일이니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관련 업무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별다른 안전 교육은 없었다. 작업 중 선호씨 맞은 편 컨테이너 날개가 접히면서 선호씨가 있는 쪽 날개까지 접혔다. 300㎏의 철판은 그대로 선호씨 몸을 덮쳤다.

선호씨의 죽음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죽음과 닮았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는 진행 중이고, 안전 교육 등 안전 규정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씨는 “지금까지 안전모를 쓰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인건비를 아끼려는 건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안전 요원도 사고 현장에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시신 수습 대신 보고부터 이뤄진 상황도 비슷했다. 이씨는 “관리자가 윗선에 보고하느라 신고를 늦게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아들의 사고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이씨는 아들의 작업이 생각보다 늦어지는 것 같아 현장을 둘러보던 중 사고 현장을 봤다. 엎드려 뭔가를 줍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곧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동방’ 측은 “보고를 먼저 한 것은 맞지만 신고 지체 시간은 1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씨는 “10분 늦으면 잘못한 것이고, 1분 늦는 건 괜찮은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에 따르면 사고 직후 곧장 구조 활동에 돌입한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 한 명밖에 없었다.

김용균씨 죽음 이후 산업재해 사고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장 노동자 사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경기 시흥의 한 자동문부품 공장에서 40대 직원이 기계에 끼어 숨졌다. 기계에 사람이 들어가면 작동이 멈추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8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40대 인부가 추락해 사망했다. 고인은 외주 인력이었다. 같은 날 충남 당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도 40대 근로자가 설비에 끼여 숨을 거뒀다.

올해 초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대책으로 꼽히지만 내년 실행을 앞두고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노동계에선 5인 미만 사업장을 배제했다는 점과 책임 의무를 축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액 상한을 낮춘 점 등을 지적하는 반면 경영계에선 중대재해의 범위 등을 좁혀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