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소시 곡 쓴 김원장? 실은 ‘유령작사가’ 있었다”

입력 2021-05-09 04:11 수정 2021-05-09 11:13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SBS·이하 ‘그알’)가 대형기획사와 연관된 유령작사가와 유령작곡가의 존재를 파헤쳤다.

8일 방송된 ‘그알’은 ‘K팝의 유령들-그 히트송은 누가 만들었는가’ 편으로 꾸며져 국내 대형기획사와 연루된 유령작사가의 정체와 K팝 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을 추적했다.

지난달 45RPM 이현배가 사망했을 당시 형인 DJ DOC 이하늘은 라이브방송을 통해 “김창열이 가사를 쓴 적도 없고, 이재용은 여덟 마디 중에 한 마디도 못 쓴다”며 그동안 이현배가 가사를 다 썼다고 폭로했다. 이현배가 김창열과 이재용을 대신해 작사를 한 ‘고스트라이터’였다는 것이다.

익명의 한 중견 작곡가는 다수의 K팝 곡에서 고스트라이터가 있다고 제보했다. 창작을 하지 않은 사람이 창작자 앞에 나서서 명성을 얻고 저작권 수익을 가져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가짜들이 너무 쉽게 부와 명예를 누리는 이면에는 진짜 작가들의 피와 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K팝 작사가 대리인이라는 익명의 네티즌은 SNS를 통해 “기획사가 학원에 작사비를 지급하고 하지만 학원은 작사에 참여한 작사가에게 작사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두 글자를 고치거나 작사에 참여하지 않고도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다”는 내용의 폭로 글을 올렸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

대부분의 작사학원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익명의 제보자 박모씨는 “김원장이 운영하는 작사학원에 다녔다”며 이번 논란이 자신이 다닌 학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작사가들,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그분의 이름이 들어간 곡을 들어보면 화려하다. 엑소, 레드벨벳, 강다니엘 곡에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김원장은 히트 작사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제보자는 “작사 과정의 참여율이 적은 김원장이 수많은 노래에 메인 작사가마냥 이름을 올리고 수익을 가져간다. 공동 작사라고 하면서 고치는 것 가지고 지분을 가져간다. 솔직히 n분의 1을 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곡의 가사를 여러 명이 쓴 경우 전체 글자 수에서 글자 수, 마디 수대로 지분을 가져가는 것이 업계의 보편적 룰이었다. 그러나 엑소, 레드벨벳, 강다니엘 곡의 메인 작사가로 알려진 작사학원의 김원장은 학원 학생들에게 데모곡을 꾸준히 공급해주는 대신 가사가 채택될 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학생에게 20%만 가져가게 했다.

제보자는 “다른 학원의 경우 가사 수익 지분을 7대 3이나 6대 4로 나눈다”며 “그런데 여기는 대표가 애초에 반을 떼가고 거기서 8대 2로 지분을 나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보자는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프로젝트곡으로 성공한 엑소·유재석의 ‘댄싱킹’의 가사를 자신이 썼지만 김원장이 800여 글자 중 30여 글자만 바뀐 뒤 나는 지분을 2.5%만 가져갔다”고 했다.

그는 “(김원장이 원래 없는 지분을 나만 챙겨주는 것처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SM(엔터테인먼트) 쪽에 알아봤더니 김원장의 지분이 버젓이 8로 잡혀 있더라”고 전했다. 김원장은 95%의 가사를 쓴 제보자보다 3배가 넘는 지분을 갖고 있었다. 김원장은 정확히 어느 부분의 가사를 어떻게 바꿨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

김원장은 대형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A&R 담당 최씨와 유착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엑소, 강타, 보아를 담당한 적이 있다. 김원장은 최씨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이 참여했다고 언질을 주는 가사가 유명 가수의 노래에 채택되도록 했다.

김원장은 그러나 “최씨에게 가사 청탁을 한 적이 없다”며 유령작사가 S가 최씨의 아내라고 했다. 최씨는 아내를 가명 S로 엑소 등 자신이 담당한 아티스트의 노래 다수에 저작권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소녀시대, 태연의 노래에 참여한 이로 가족 명의인 고스트라이터를 저작권 협회에 올려 수익을 챙긴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SM 측은 “당사는 최근 예명의 작사가가 A씨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A씨가 해당 가사의 선정에 참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당사는 A씨가 지인(가족)이 작사가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회사에 고지하지 않은 점에 대해 책임을 물어 유닛장 직책을 박탈하고 중징계를 결정했다”며 과거 같은 이슈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가 퇴사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SM은 “최근 해당 직원의 부적절한 업무 진행이 확인돼 이와 관련해 징계 조치했다”고 전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최근 SM 소속 가수 곡들에 자신의 아내가 쓴 가사를 회사 모르게 채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음악 업계에서는 유령작사가뿐만 아니라 유령작곡가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폭로하는 순간 업계에서 매장 또는 퇴출 수순을 밟아야 하는 현실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창작물에 대한 법적 권리를 주장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게 대다수 관계자의 의견이다. 작곡, 작사, 제작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 제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