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준영을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했다 취하한 전 여자친구가 사건 발생 5년만에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그는 성범죄 관련 인터넷 기사 댓글창 비활성화, 2차 가해 가중 처벌 등을 요구하며 “꼭 변해야 할 것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정준영에게 2016년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던 A씨는 5일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변화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등록했다. 그는 청원에서 총 4가지 사항을 요청했다. ▲자신을 모욕한 특정 방송사 기자들 징계 ▲포털사이트 성범죄 기사 댓글 비활성화 ▲2차 가해 처벌법 입법 ▲민사소송 시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 방안 마련 등이다.
A씨는 먼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던 기자들을 징계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지난 3월 이 유튜브 채널에 “과거 고소를 취하한 것은 무고죄로 피해를 입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댓글을 남긴 바 있다. A씨는 해당 기자들이 자신을 ‘정준영이 연락을 끊자 고소하고, 재결합하고자 고소를 취하한 사람’인 것처럼 언급했다며 “이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자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이어 “카카오톡 대화를 어떤 공익적 가치도 없이 불필요하게 공개해 가십거리로 소모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또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성범죄 뉴스의 댓글창을 비활성화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사건 당시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악성 댓글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학업도 지속할 수 없었다”면서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댓글을 보고 사건 진행을 포기하거나 가해자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등 비이성적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성범죄 2차 가해 처벌법’을 입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에도 (‘단톡방 사건’이 터졌던) 2019년에도 XXX 동영상, 피해자 리스트 등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갔었다”며 “피해자의 불법촬영 동영상을 찾는 네티즌의 가해 행위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더 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비난, 의심, 그리고 불법촬영 영상을 찾아보는 행위는 모두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2차 가해 행위”라며 “피해자들을 보호할 법적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민사소송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보호 관련 입법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주소, 개인 정보 등이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면서 “가해자에게 보복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안은 이미 법안이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법이 빠르게 시행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A씨는 6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슬랩’과 비공개 인터뷰에서 5년 만에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5년 전 한국 사회는 성범죄 피해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불법촬영이 실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관련 기사에 수천개의 악성댓글이 달리기도 했다”며 “이제야 불법촬영과 2차 가해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지만 꼭 변해야 할 것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시 악성댓글이 달릴 수 있지만 나설 수밖에 없었다”면서 “앞으로 일어날 변화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 당시) 댓글에서 말하는 ‘꽃뱀’이 될까 봐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하지 못했고, 나를 의심하는 댓글 때문에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따져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불법촬영만큼 날 괴롭게 한 것은 댓글로 인한 2차 가해였다”고 했다.
아울러 “내가 당한 성범죄의 가해자가 유명인이어서, 2019년 (단톡방)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가해자가 징역형까지 받아 이제야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며 “내가 할 수 있고, 나만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려 한다. 고통받고 있는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를 탓하는 말에 절대 흔들리지 말고 자기 검열을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