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일하던 친구가 죽었습니다. 만23살이었습니다.”

입력 2021-05-07 02:14 수정 2021-05-07 02:14
지난달 22일 개방형 컨테이너 사고로 사망한 고 이선호 군의 빈소. 대책위 제공

“하루 평균 7명이 산재로 희생된다고 하지만 그게 제 친구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난달 22일 한 청년이 산업재해(산재)로 숨졌다.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부두 내에서 적재물 정리작업을 하던 대학생 이선호(23)씨다. 이번에도 사고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 현장에서 벌어졌다. 이씨는 평택항의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을 맡은 업체가 다시 인력 위탁을 맡긴 인력업체 소속이었다.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화물터미널 앞에서 故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씨의 유가족과 친구들 및 민주노총 평택 안성지부와 정의당 경기도당, 진보당 경기도당 등으로 구성된 ‘故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참석했다.

사망한 대학생 이씨, 그는 ‘재하청 업체’ 노동자였다
사고가 난 FRC(개방형 컨테이너, Flat Rack Container). 일반 컨테이너와 달리 천장과 좌우가 뚤린 형태라 전후, 좌우, 위로 하역할 수 있다. 왼쪽과 오른쪽에 세로로 서 있는 게 FRC 날개 부분이다. 대책위 제공

대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하던 이씨의 원래 업무는 동식물 검역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1일부로 검역 별로 분리해 투입되던 인력이 통폐합됐다. 이에 이씨는 동식물 검역과 함께 다른 작업도 맡게 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지난달 22일 이씨가 한 개방형 컨테이너(FRC) 날개 해체 작업은 기존에 했던 업무가 아닌 그날 처음 맡은 일이었다고 한다.

사고 당시 이씨는 원청 격인 ‘ㄷ’ 업체의 요청에 따라 개방형 컨테이너(FRC)의 안전핀을 제거하고 나무 합판 잔해 정리 등 내부 뒷정리 작업을 수행 중이었다. 동료 A씨는 이씨가 청소하던 반대편 FRC 날개를 지게차로 날개를 접으려 했는데, 진동에 의해 이씨 쪽 컨테이너 날개가 접혔다. 이 과정에 이씨는 300kg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에 그대로 깔려 큰 부상을 입게 됐다. 이씨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이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은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이다. 평택항 총 관리 책임은 해양수산부 평택지방해양수산청에 있다. 그러나 이씨의 소속은 이들과는 무관하다. 수출입 컨테이너 세관 검수 등을 맡은 ‘ㄷ’ 업체가 터미널 관리를 하는데, 실질적 현장 업무는 일용직 인력을 공급하는 ‘ㅇ’ 인력회사에 다시 위탁을 맡겼다. 이씨는 이 ‘ㅇ’인력 소속이었다.

“같은 이유로 사람이 계속 죽는데… 왜 바뀌지 않는가”
이씨 친구라고 밝힌 김벼리(23)씨는 지난 5일 SNS에 “사고 과정에 너무나 많은 문제점과 부당함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반복되는,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것만 나열하겠다”며 글을 올렸다. 김씨가 짚은 것은 ▲전반적인 안전관리 미흡 ▲구조물 불량 ▲원청의 무리한 작업 지시 ▲초동대응 미흡 등이다.

김씨와 대책위 등에 따르면 이씨가 일한 현장은 ‘안전’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안전규정 준수 여부도 명확지 않은 상황이다. 사망 당일 이씨는 처음 하는 업무에 투입되면서도 아무런 사전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영상을 보면 당시 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 한 명만 확인될 뿐 안전 관리자나 신호수는 보이지 않는다.

구조물 불량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현장 작업 노동자들은 FRC 날개의 무게는 300kg으로, 불량이 아닌 이상 진동 때문에 넘어질 수 없다고 증언했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당시 컨테이너 날개 90도로 세워져 있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로 이씨가 크게 다친 직후 119 신고보다 사내 보고가 먼저 진행됐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이씨 지인들은 사고 후 약 10분 정도 시간이 지체되는 등 초동 대응이 잘 안 되었다고 짚었다.

원청 직원은 당시 이씨에게 나무 합판 잔해를 정리하라는 작업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평소에 FRC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나무 합판 조각은 원래 정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원청 직원이 두 번이나 잔해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이와 관련 이씨가 수행한 업무가 재하청 위탁 계약이 정한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수사 중이다.

이씨의 친구 김씨는 SNS글을 통해 “예측과 예방이 불가능한 것들이 전혀 아닌데, 하면 되는 건데, 돈 아낀다고 뭐 좀 더 남겨 본다고 이걸 안 하고 또 반복해서 사람이 죽었다”면서 “같은 이유로 사람이 계속 죽는데 왜 바뀌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왜 책임자들은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나. 죽음마저 교훈이 될 수 없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는 건가”라고 호소했다.

원청은 과실 부인… “친구 14일째 장례식장에”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화물터미널 앞에서 故 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책위 제공

김씨가 SNS에 남긴 글에 따르면 이씨의 시신은 15일째 평택의 한 장례식장에 머물러 있다. 그는 “빈소 안내판에 새로운 사람들 이름이 오르고, 사라지는데 친구 이름만 14일째 그대로”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전히 원청 측은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고를) 이선호군의 책임으로 몰고 있다”며 “(이씨의)아버님께서 사측이 인정할 때까지 빈소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6일 기자회견에서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이라는 논리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맡기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내자는 사회적 요구는 쉽게 기억에서 잊히고 있다. 죽음을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홍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선호군의 사망과 관련해 진상조사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2, 3의 이선호군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어 “노동부는 평택항 전체 동종 업무와 유사 업무에 대해 즉각적으로 작업 중단을 내리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노동안전보건 관리 대책위원회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기업 측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사람이 다치고, (산업)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기업이 안전관리를 위해 들이는 비용보다 산재로 사람이 다쳤을 때 보장해야 하는 비용이 더 많이 부과되도록 변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