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코로나19 백신 지적재산권 한시적 면제 지지 의사를 공식화했지만 실제 백신 공급을 늘리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만장일치 합의가 필요하고, 특허권을 쥔 제약회사들의 적극적 조치도 수반돼야 한다. 백신 제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 제약회사의 기술이전 도움 없이는 의미 없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 제조를 확대하고 원료 공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지식재산 보호를 강력히 믿지만 펜데믹 종식을 위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보호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세계 공중보건 위기를 바로잡기 위한 지혜로운 리더십”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장밋빛 청사진을 전망하진 않았다. 최종 합의 과정이 지난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서는 지재권 면제가 백신 수급을 더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지속 제기돼 왔다.
우선 WTO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지재권 유예가 가능한 상황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산술적으로 WTO 회원국이 무려 164개국이다. 주요 서방 국가들도 자국 제약사를 의식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통신은 “EU, 영국, 일본, 스위스, 브라질, 노르웨이가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이 대표도 “WTO 규정에 따라 지재권 보호 포기에 필요한 국제적 합의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들의 협조를 얻는 것도 문제다. 당장 제약업계는 “백신 공급망을 약화하고 위조 백신을 더 확산시킬 것”(미 제약연구생산자 연합) “복잡한 문제의 단순하고 틀린 해답”(국제제약협회연맹) 등의 유감 성명을 내놨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크레이그 가스웨이트 교수는 “(사람들은) 조리법을 읽고 치즈 케이크를 만드는 것처럼 여기지만 코로나19 백신은 개발회사 도움 없이는 복제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술”이라고 평가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실제 화이자 백신 제조에는 19개국 86개 업체가 제공하는 280개 구성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조합하기 위한 고도로 전문화된 장비와 인력 역시 필수다. 국제사회가 지재권 유예를 강제해도 당장 백신 생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화이자나 모더나는 이번 조치가 신기술을 중국·러시아에 넘겨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미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제조 생산에 필요한 설비 및 원료 확보 문제도 넘어야 한다. 미셀 맥머리 히스 바이오테크놀러지 혁신기구 대표는 “최적의 조건에서도 짓는 데 1년이 걸리는 주방 건축 설계도를 건네주는 것”이라며 “위험한 새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