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요양시설에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가족들은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 어르신과 기저질환자가 많은 요양시설의 대면면회가 금지·제한되면서다. 인지능력이 약해진 어르신들은 코로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현재 서울시내 총 515곳의 어르신 의료복지시설 이용자는 약 1만6000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약 6만여 명의 서울시민이 ‘코로나 이산가족’이 됐다.
요양시설 비대면 면회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유리나 비닐 벽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로 대화해야 하는 만남은 낯설다. 마이크 등 인프라도 열악하다. 청력이 좋지 않은 어르신은 가족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 10분 남짓 주어진 면회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방역지침상 접촉이 불가능해 가족들은 그리운 부모님을 눈앞에 두고도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헤어져야 한다.
서울시가 가정의 달 요양시설에 부모님을 모시고 코로나 생이별을 겪고 있는 가족들을 위한 비대면 면회 전용공간인 ‘가족의 거실’을 개발했다. ‘가족의 거실’은 삭막하고 인위적인 면회실이 아닌, 집 거실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곳에서 면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약 15㎡(4.5평) 면적의 이동식 목조주택으로 만들어 요양시설 외부의 적절한 장소에 설치할 수 있다.
기존 면회실에선 허용되지 않았던 가족과 손을 맞잡고 하는 대화도 가능하다. 선별진료소 검체 채취에 사용되는 방역 글러브를 설치했다. ‘가족의 거실’을 통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비접촉 면회 방식이다.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도 선명하게 잡아내는 ‘최첨단 음향시스템’도 설치했다. 청력이 약한 어르신도 유리창 너머 가족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도 설치해 가족의 스마트폰과 연결(미러링)해 사진과 영상을 함께 볼 수 있고, 해외에 살거나 면회 인원제한 때문에 미처 오지 못한 다른 가족들과 영상통화도 할 수 있다. 면회 막바지엔 가족들과 사진 한 장의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서울시는 ‘가족의 거실’을 시립노인요양시설인 ‘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에 시범 설치하고 5월 첫째 주부터 상시 운영한다고 6일 밝혔다. 시는 이번에 개발한 디자인 매뉴얼을 오픈소스로 무상 개방한다. 요양시설뿐 아니라 노인·장애인 이용시설 같이 대면면회가 제한된 다양한시설에서 ‘가족의 거실’을 설치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에 설치된 ‘가족의 거실’ 내부는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휠체어와 이동형 침상 모두 이동·배치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어르신 가정에서 볼법한 추억의 뻐꾸기시계와 달력, 소파 등으로 채워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요양센터 어르신의 90%는 휠체어를 사용한다. 나머지 10%는 거동이 불편해 주로 침대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와상 어르신이다. ‘가족의 거실’은 이동부터 면회까지 감염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어르신은 센터와 연결되는 전용 통로로 바로 들어올 수 있고, 면회 가족은 외부 전용 출입문으로 들어온다. 면회공간은 유리창으로 완벽하게 분리돼 있어 감염 우려가 없다.
방역기준도 철저하게 준수했다. 환기 가능한 공조시스템을 갖췄고, 내부 자재와 집기류는 소독이 용이한 품목들로 구성했다. 면회가 끝날때마다 환기·소독한다. 가족과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역 글러브(라텍스)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착용한 후 접촉한다. 방역 글러브는 매 면회 시 소독하며, 1개월 주기로 교체한다. 한양대 병원건축연구실의 자문을 거쳐 방역 안전성도 검증받았다. 응급상황 발생 시 관리자와 즉시 연락할 수 있는 비상벨도 설치됐다. 한국의료복지건축회장을 맡고 있는 양내원 교수는 “이 공간은 코로나 시대에 요양원과 같은 공공시설이 생각해 봐야 할 '따뜻한 돌봄의 공간'의 좋은 예시”라며 “어르신을 위한 공간을 설계할 때 안전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정작 놓치기 쉬운 것은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배려”라고 강조했다.
시는 면회가족이 없는 어르신을 위해서도 ‘가족의 거실’을 여가·취미활동 공간으로 시범운영했다. 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 이용 어르신의 약 10%는 명절에도 면회객이 없다. 넉넉한 내부에 대형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혼자서 조용히 영화나 미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체조 같은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1인실이 없는 요양센터에서 조용하게 기도하고 명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코로나 상황에 대비해 방역위생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 감정까지 섬세하게 배려한 사회문제해결 디자인을 개발했다”며 “시민의 일상을 따뜻한 눈높이로 들여다보는 선제적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족의 거실’은 가족 간 원활한 소통에도 주안점을 뒀다. 기존에 마이크를 이용한 대화시 소리가 울리는 하울링 현상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양방향 고성능 음향시스템’을 설치했다.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도 효율적으로 집음하고, 고사양 스피커로 고음·저음도 선명하게 출력한다. 어르신들이 낯선 장치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마이크는 최소 크기의 핀마이크를 사용한다.
대형 화면도 설치했다.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휴대폰 속 사진과 영상을함께 보고 영상통화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다. 유리면의 빛 반사로 인한 어지러움을 방지하고 화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암막커튼도 설치됐다. 면회가 끝나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가족들을 위해 유리창 너머 가족과 어르신이 함께 사진을 찍고 무선으로 연결된 포토프린터로 두 장의 사진이 즉석 출력돼 한 장씩 사진을 나눠가지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는 ‘가족의 거실’ 도입과 함께 당초 주말에만 이뤄졌던 면회를 평일과 주말 모두 운영한다. 선착순 사전 예약제를 통해 신청을 받는다. 면회시간은 기존과 동일하게 10분이다.
오세훈 시장도 어버이날을 앞둔 6일 시립동부노인요양센터 ‘가족의 거실’을 찾아 민모 어르신(91)과 비대면으로 면회하고, 어버이날 깜짝선물로 비대면 VR(가상현실) 여행을 선물했다. 오 시장과 어르신이 함께 VR을 쓰고 어르신이 평소 그리워하던 추억의 장소인 한강공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평소에 “탁 트인 한강에서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싶고, 여동생들과 시설입소 전 같이 본 불꽃놀이가 그립다”고 밝혀왔던 어르신의 소망을 구현한 것이다. 어르신의 인지상황을 고려해 세심하게 촬영되었다.
VR 업체가 재능나눔으로 콘텐츠를 제작 지원했다. VR콘텐츠를 재능나눔한 전우열 VentaVR대표는 “바깥활동 제약이 많은 요양시설 어르신들을 위한 가상체험 프로그램은 어르신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