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만 남은 아치형 이색 주택 ‘테시폰’ 문화재된다

입력 2021-05-06 11:42 수정 2021-05-06 13:15
제주 한림읍 금악리 135번지의 테시폰식 주택. 문화재청이 6일 등록 예고한 '제주 이시돌목장 테시폰 주택' 2동 중 하나다. 문화재청 제공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중산간 지역에서 제주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아치형의 낡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이라크 고대 도시 유적인 테시폰(Ctesiphon)의 아치 구조물의 형태를 참고해 창안해 낸 건축 유형인데 1960년대 외국인 신부가 제주에 목장을 지으며 도입한 것이 시초다. 테시폰식 건축은 전국에 보급됐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지역에만 남아있다.

문화재청은 ‘제주 이시돌목장 테시폰식 주택’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제주지역의 테시폰은 합판을 텐트 모양으로 말아 지붕과 벽체의 틀을 만든 뒤 그 사이에 가마니를 깔고 시멘트를 덧발라 만든 건축물이다. 건물 내부에 기둥이 없어 시공이 빠르고 자재비를 절약할 수 있다. 건물의 하중을 고루 분산하는 아치형인 데다 지붕이 곡선형이어서 바람이 강한 제주에 적합했다.

테시폰식 건축이 제주에 도입된 것은 1960년대 외국인 신부에 의해서다.

아일랜드 출신의 故 맥그린치 신부(한국명 임피제, 1928~2018)는 한국전쟁 직후 제주시 한림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가난한 제주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목장을 설립했다. 1960년 안식년을 맞아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던 맥그린치 신부는 더블린 신학교에서 테시폰식 건축기법을 배우게 됐고, 이듬해 제주로 돌아온 그는 성 이시돌 목장에 다양한 형태의 테시폰식 숙소와 돈사를 지었다. 비싼 철근 없이도 저렴하게 시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난한 제주에 매우 적합한 건축양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제주에서는1960∼1970년대에 주택과 창고, 돼지우리 등으로 보급됐다.

테시폰식 건축은 전국에 보급되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현재 제주지역에만 24동이 남아있다. 문화재청은 이 중 가장 오래돼 상징성과 역사성이 있는 2동(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135번지, 77-4번지)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건립 시기는 1961년이며 ‘이시도레 하우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건물 규모는 30∼40㎡이다.

문화재청은 테시폰이 제주지역 목장 개척사와 생활사, 주택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근대건축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