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김재덕-김보라 부부, 같은 방향 보지만 다른 길 걷는다

입력 2021-05-05 20:16 수정 2021-05-05 21:25
안무가 김재덕과 김보라 부부가 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김재덕(37)과 김보라(39)는 부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02학번인 이들은 둘 다 한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안무가로 꼽힌다. 해외에서 러브콜이 이어지던 두 사람이 코로나19로 국내에 계속 머문 덕분에 올해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올리게 됐다. 김재덕은 7~8일 LG아트센터의 올해 기획공연으로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시나위’를 선보이고, 김보라는 6월 4~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 ‘그 후 1년’으로 관객과 만난다.

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코로나 이후 부부로서 가장 오랜 기간 함께 살며 대화를 나눈 것 같다. 2015년 말 결혼한 뒤에도 각각 해외 투어가 많았던 데다 2018년 하반기에야 같이 살 집을 구했다”고 지난 1년간을 되돌아봤다.

해외 투어 중단된 대신 국내서 한달 간격으로 공연

김재덕이 이끄는 모던 테이블과 김보라가 이끄는 아트 프로젝트 보라는 해외 투어가 모두 중단됐다. 김보라는 “해외 투어가 중단되며 ‘일이 없어진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비해 김재덕은 “개인적으로 음악에 집중했다. 믹스와 마스터링 등을 공부하면서 두 번째 정규 앨범과 싱글 앨범들을 계속 냈다”고 답했다.

안무가 김재덕과 김보라 부부가 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김재덕의 경우 작곡·작사·노래까지 하는 뮤지션으로 지금까지 2장의 정규 앨범과 30여곡의 싱글을 발표했다. 자신의 안무 작품 속 음악도 작곡하는 그는 아내 김보라의 작품에서도 음악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음악 외엔 아내의 작품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중 2곡과 싱글 가운데 6곡을 저예산이지만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형태로 관객을 만난 셈이다.

김보라도 지난해 처음으로 댄스 필름 감독에 도전했다. 무대 공연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제작과정까지 담은 댄스 필름 2개와 코로나 이후 무용단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김보라는 “코로나 이후 좋든 싫든 영상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활용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크니스 품바’, 안무가 김재덕의 본격적인 출발점

이번에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다크니스 품바’는 2006년 초연된 김재덕의 대표작이다. 2005년 프로 데뷔작 ‘크레셴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전통적 품바(각설이) 선율을 현대적 음악과 움직임으로 재해석했다. 라이브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김재덕 스타일을 보여주는 ‘다크니스 품바’는 고교 시절 강렬한 인상을 받은 가수 신해철의 ‘모노크롬’ 앨범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재덕 안무 '다크니스 품바'의 한 장면. 모던 테이블 제공

김재덕은 “‘모노크롬’ 앨범을 고등학교 때 들었는데, 각설이 타령 등 한국 음악의 가락을 현대적으로 들려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또 ‘품바가 잘도 돈다’라는 구절이 잊히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대목을 꼭 살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다크니스 품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크니스 품바’는 초연 이후 국내외에서 주목받으며 지금의 그를 있도록 만들었다. 2009년 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의 해외상임안무가가 된 것도 이 작품 덕분이었다. 2016년 영국 더 플레이스, 2017년 러시아 체홉 국제연극제, 2019년 헝가리 시겟 페스티벌 등 주요 무대의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초연된 솔로 춤 ‘시나위’​는 굿거리장단에 맞춰 김재덕의 직관적이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별한 줄거리와 고정된 안무가 없으며 ‘지베리쉬’라는 뜻도 내용도 없는 소리를 15분 동안 반복하는 게 특징이다. 김재덕은 “춤에서 비언어적인 가치를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가 텍스트로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고자 시도해 봤다”면서 “엄마가 갓난아이의 불분명한 말을 느낌으로 이해하는 것을 관객과 춤의 관계에서 생각해 봤다”고 설명했다.

김재덕의 솔로춤 '시나위'. (c)Park Sang Yun

코로나19가 김보라에게 일으킨 변화

김보라는 지난해 6월 권령은, 랄리 아구아데(스페인)와 함께 브람스 음악으로 만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무산됐다. 대신 올해 세 안무가가 공연 취소 이후 1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 후 1년’이 기획됐다. 김보라는 사운드 아티스트 카입과 함께 신작 ‘점’을 선보인다. 김보라는 “코로나 시대 남편이 만든 음악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이번 작품은 사운드 아티스트 카입과 처음으로 작업하게 됐다”면서 “남편 이외 뮤지션의 음악을 작품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 엄밀히 말해 음악이 아니라 소리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고 피력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더 크게 느꼈고, 그것이 신체에 미치는 변형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김재덕과 김보라는 한예종 출신이 모인 LDP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안무가로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안무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김재덕의 경우 움직임의 중심에 음악이 있다. 다소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용을 시작해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서인지 춤은 자유로운 편이다. 그는 “처음부터 춤동작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음악을 구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그가 201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남성 무용수만으로 만든 모던 테이블은 ‘속도’ ‘맨 오브 스틸’ ‘야윈소리’ ‘털다’ 등 남성적 에너지가 가득한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20대부터 해외에서 안무가로 활동한 그는 어디서 작업하든 통용되는 안무 언어를 고민해 왔다. 그는 “직관적인 동작이지만 언어적으로 확실한 메소드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내 춤동작에 ‘공기’ ‘구름’ 등 쉬운 단어를 붙였다. 이런 게 30여 개 되는데, 무용수들이 나와 클래스를 가지면 금세 익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 그후1년'에 참여하는 김보라 ⓒBAKi

반면 2010년 ‘혼잣말’부터 안무에 본격적으로 나선 김보라는 2013년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설립한 뒤 ‘꼬리 언어학’ ‘소무’ ‘인공낙원’ ‘실리콘밸리’ 등 화제작을 잇달아 선보였다. 그는 “나는 미장센에서 안무의 동기를 얻는다. 강렬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데서 시작하다 보니 안무의 깊이는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했지만,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반된 두 사람의 안무 스타일

김보라의 작품 가운데 ‘혼잣말’과 ‘소무’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물신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대 사회를 비판해 호평받으며 해외에서 자주 초청받았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더 억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오히려 여성에 대해 말하려면 성(性)에서 벗어나 인간의 몸 자체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안무 '소무'의 한 장면. (c)김근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런데, 남편 김재덕이 춤동작 언어를 만드는 것과 달리 김보라는 움직임을 언어화 하는 것을 반대한다. 움직임 자체가 작품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 작품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은 김보라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추상적인 움직임의 규칙에 이름을 붙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대신 내 작품의 리허설 기간이 긴 것은 무용수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내 움직임의 규칙을 공유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흔히 부부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고 한다. 김재덕과 김보라 부부는 현대무용이라는 방향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안무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