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옷가게는 점원이 없습니다”

입력 2021-05-05 10:54 수정 2021-05-05 12:23

세종 새롬동에 위치한 ‘밀리’는 언뜻 보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옷가게다. 40㎡ 남짓한 공간에 여성·아동 의류와 각종 액세서리가 진열돼 있다. 저렴하면서도 탁월한 디자인의 제품으로 고객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전략이지만 이 가게가 돋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데 있다. 점원이 한 명도 없는 무인 가게라는 점이다. 고객이 제품을 고른 뒤 무인 결제기로 가져가 바코드를 인식시키면 결제할 가격이 안내된다. 카드 결제가 기본이지만 현금 수납함에 알아서 현금을 넣고 가는 고객도 있다.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점 역시 눈에 띈다. 점원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3년 가까이 공실로 남아 있었던 이 공간이 무인 옷가게로 변모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문을 열 때만 해도 우려가 줄을 이었다. 방범용 폐쇄회로(CC)TV가 4대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가게에 사람이 없으면 도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밀리를 창업한 최모(41·여)씨는 5일 “창업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 다 망할 거라고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결과는 어떨까. 무인 옷가게를 운영한 지 11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망할’ 만큼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최씨는 창업하기 전 4년 정도 관광안내사로 일을 했다고 한다. 업무 시간이 주말이다 보니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보낼 시간을 만들기가 힘들었다. 무인 옷가게 창업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씨는 “하루 한 번 정도 청소하러 가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제품을 사러 서울 동대문·남대문 시장을 방문하는 정도만 시간을 내면 된다”며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주부가 일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벌이도 나쁘지 않다. 최씨는 “아이들 학원비 정도는 벌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속도를 내게 만든 비대면(언택트) 서비스 산업이 무인 카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넘어 무인 옷가게로까지 진화했다. 저렴한 가격의 제품에서 좀 더 가격이 비싼 제품으로 한 단계씩 확장되는 모양새다. ‘사람이 없어도 운영 가능하다’는 인식 역시 상식이 돼 가는 추세다.


정부도 지원에 나설 계획인 만큼 다양한 형태의 무인 가게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서비스 표준화 추진 전략에 ‘무인 사업장’ 항목이 포함돼 있다. 제품 특성을 고려한 무인 서비스 운영 매뉴얼과 보안 표준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선의에 기대야 한다는 점 때문에 약점으로 꼽히던 보안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9만4000명 감소한 130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감소세가 가팔라졌다.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415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만3000명 늘면서 2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인 가게로 인한 고용 감소는 거스르기 힘든 추세다.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타트업 등을 지원하는 산업 정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