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인데 함께 놀 수 없다고요?” [人턴]

입력 2021-05-05 06:10 수정 2021-05-05 06:10
통합놀이터인 양천구 쿵쾅쿵쾅 꿈마루놀이터

놀이터는 아이들의 세계를 오롯이 담은 공간이다. 모든 공간에 주인이 있듯이, 놀이터의 주인은 어린이다. 그렇다면 모든 아이가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맘껏 뛰놀 수 있을까.
상단에 위치한 3개의 놀이터만 장애·비장애아동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통합놀이터이다.

6개의 사진 속 놀이터 중 안타깝게도 절반의 공간에서만 모든 아이가 ‘함께’ 놀 수 있다. 윗줄 사진 3개만이 장애아동들도 제약 없이 놀 수 있는 통합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아래 3곳은 장애 어린이들에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놀이터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초의 통합놀이터는 불과 5년 전인 2016년에 만들어졌다. 통합놀이터는 신체적 능력, 장애 유무, 나이 등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장애인 전용 놀이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6일 통합놀이터인 서대문구 홍박공원 놀이터와 양천구 꿈마루 놀이터를 찾았다. 통합놀이터 연구를 해온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김남진 사무국장과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 소장이 취재 현장에 동행했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서대문구 홍박공원 내 통합놀이터에 설치돼 있는 경사로.

통합놀이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넓은 폭의 경사로가 눈에 들어온다.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도록 턱이나 계단, 평평하지 않은 바닥 등 물리적인 장벽을 제거했다.

“장애아동만을 위한 구조물이 되어버리면 장애아동 때문에 놀 공간을 빼앗겼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어요.”(김연금 소장)

그래서 경사로는 장애아동의 이동 편리성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 공간도 된다. 실제로 홍박공원 통합놀이터는 경사로와 모래언덕을 연결해 아이들이 그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했다.
옮겨타기 시스템 시범 보이는 모습.

‘옮겨타기 시스템’이 가능하도록 배치한 계단과 디딤판도 시선을 잡아끈다. 옮겨타기란 높낮이가 있는 놀이시설의 접근 방법의 하나로, 유아나 하반신이 자유롭지 않은 어린이들도 혼자 계단에 앉은 채 오르내릴 수 있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도 휠체어에서 내려 높낮이가 있는 놀이시설로 접근할 수 있다.
옮겨타기 시스템을 추가한 놀이터 모습.

이 놀이터는 원래 있던 놀이기구에 옮겨타기 플랫폼을 추가했다. 기존의 놀이 시설을 부분적으로 조금씩만 바꿔도 장애아동의 접근성이 확 높아질 수 있다.
홍박공원 통합놀이터에 마련된 모래놀이공간.

홍박공원의 통합놀이터에선 모래 놀이 공간에 포켓식으로 놀이 테이블을 넣었다. 넓고 얇은 놀이 테이블을 설치해 휠체어 사용자와 키가 작은 아이들이 선 채로 나란히 놀 수 있게 했다.
일반놀이터 그네.

“우리나라 그네는 다 똑같이 생겼어요. 그네만 다르게 만들어도 다양한 조건의 아동들이 한공간에서 함께 놀 수 있어요.”(김연금 소장)

대다수 놀이터의 그네는 획일적이다. 그러나 통합놀이터에서는 마주 보는 그네, 휠체어 그네, 바구니 그네 등 다양한 형태의 그네가 존재한다. 놀이터를 이용하는 장애 아동과 연령대에 따른 유아들의 신체적 능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물망 그네, 바구니 그네.

그네는 앉아 있는 동안 중립적인 신체 상태를 유지해 주는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놀이법이나 도전 수준, 보호자의 도움 정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그네 유형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양천 꿈마루 놀이터의 회전무대.

“‘이 놀이 기구는 휠체어 타는 친구들을 위한 거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통합’의 의미가 사라집니다.”(김남진 사무국장)

통합놀이터의 놀이기구에서 장애인 이용에 대한 설명이나 장애인 마크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장애인용이라는 설명을 넣는 순간 이 공간은 장애아동만을 위한 시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놀이터는 장애아동의 편의를 위하지만 동시에 비장애 아동들의 재미를 동시에 추구한다. 실제로 장애아동뿐만 아니라 모든 아동이 놀이기구를 이용한다.
통합놀이터 연결 통로.

“아이가 둘인데,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가 항상 다른 장소에서 노는 게 싫었어요.” 김 사무국장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을 함께 키우는 한 부모의 이야기라며 발언을 소개했다.

여기에서 착안해 놀이기구에 연결 통로라는 걸 만들게 됐다. 실제로 통합놀이터는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놀이 공간에 난이도가 다른 여러 기구를 만들어 배치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나이와 신체 능력을 갖춘 아동들이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하며 놀 수 있는 ‘교차’ 공간을 둔다.

장애아동만을 위한 놀이터와 일반 놀이터를 만들어 ‘장애가 있는 아동’과 ‘장애가 없는 아동’으로 구분하는 대신 같은 놀이 공간에서 누구나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모든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다”
Have Wheelchair Will Travel 홈페이지 캡처.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제시한다. 이는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놀 권리를 의미하며, 장애아동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역시 제7조에서 “장애아동이 다른 아동들과 동등하게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놀이터에 관한 규정을 ‘어린이놀이시설법’ ‘어린이제품법’ 등에 담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장애아동을 이용 주체로 두는 것에 관한 규정은 없다. 통합놀이터를 조성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곧 모든 아동의 ‘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로 이어진다.

그 이유로 김 사무국장은 “현재 놀이터에서 장애아동의 ‘편의성’은 고려되지 않는다”며 “사실 ‘편의성’이라 지칭하지만, 장애아동에게는 이 편의성 요소가 있어야만 실제로 이용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놀이터 모습. Brisbanekids 홈페이지, Have Wheelchair Will Travel 홈페이지 캡처.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어떨까.

미국은 ‘장애인법’으로 미국 전역의 놀이터가 통합놀이터로 기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앙 정부 차원에서 통합놀이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가이드라인에는 장애 아동이 일반적으로 놀이 공간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구성 요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놀이 공간 내 기구 등에 대한 규격이 포함돼 있다. 장애아동이 접근 가능한 통로의 비율은 물론 경사로와 옮겨타기 시스템 등 세부 항목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하고 있다.
유럽 국가에서는 장애아동을 위한 다양한 놀이기구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playgroundcentre 홈페이지 캡처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 국가 역시 놀이터를 만들 때 장애아동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일례로 스웨덴은 그네의 70%가 다 다른 모양으로 설계돼 있다.

스웨덴에서는 놀이 공간 설계 계획을 세울 때부터 ‘어린이 전문가’가 참여하다. 또 어린이들이 “놀이 공간에 쉽게 ‘접근 가능’한지”와 같은 체크리스트를 직접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성별, 나이, 인종, 장애 등 개인의 상황이나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김연금 소장은 “모든 아이가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라고 했다. 장애·비장애를 떠나 놀고 싶은 아동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통합’과 ‘놀이터’의 의미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人턴]은 스쳐지나가는 일상에서 포착한 ‘낯선 현장’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돌아볼 때 일상은 다르게 보이고, 때론 이 낯섦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듭니다. 국민일보 기자(人)들이 시선을 돌려(turn) 익숙하지만 낯선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김아현 인턴기자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