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이 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사건사무규칙에 대해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공수처가 ‘공소권 유보부 이첩’ 등의 조항이 담긴 규칙을 제정·공포한 것이 형사소송법 등 형사사법체계에 맞지 않다는 취지다.
대검은 입장문에서 “공소권 유보부 이첩 등을 담은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법적 근거 없이 새로운 형사절차를 창설하는 것으로 형사사법체계와 상충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앞서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 비위 사건을 검찰이나 경찰에 이첩한 뒤 해당 기관이 수사를 완료하면 사건을 다시 넘겨받아 공수처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조항이 포함된 규칙을 공포했다.
대검은 사법경찰관이 공수처가 수사권과 공소권을 모두 가진 사건을 수사할 때 공수처에 영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형사소송법에 상충될 뿐 아니라 사건관계인들의 방어권에도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문제 삼았다. 영장 지휘나 송치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법에 명문화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검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내부 규칙인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에 국민의 권리, 의무 또는 다른 국가기관의 직무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규정한 것은 우리 헌법과 법령 체계에 부합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실무상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공수처의 갈등이 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애초 검찰과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서 사건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 관련 이첩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공수처가 수사는 검찰에서 하되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하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담은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해괴망측한 논리”라며 반발했고, 검찰 내부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검은 공수처가 유보부 이첩 조항을 규칙에 포함시키는 안을 추진하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해당 조항을 공식화하면서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검찰 내부에선 공수처 내부 규칙이기 때문에 검찰이 따를 필요는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법집행 기관이 법에도 없는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고 비판했다. 공수처는 해당 규칙이 “대통령령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직 부장검사는 “대통령령이면 대통령령이지, 준하는 것은 무엇이냐”며 “규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향후 수사기관 간 협의체를 통한 논의를 지속할 계획이라는 입장이지만, 조율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직 차장검사는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맘대로 공포한 마당에 협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검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각자 법률에 따라 주어진 권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