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누나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남동생이 붙잡히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그는 조작한 누나와의 메신저 대화를 경찰에 제공했고 누나의 장례식장에서는 영정을 들며 슬픈 척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장기간 범행이 가능했던 이유로 범인의 치밀한 거짓말과 이를 깊이 의심하지 않은 경찰의 부실 수사를 꼽고 있다.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남동생 A씨(27)는 지난 2월 14일 한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적 있다. 딸이 사라진 사실을 알아챈 부모가 인천 남동경찰서 한 지구대에 가출 신고를 했을 때다. 경북 안동에 떨어져 사는 부모와 달리 B씨와 함께 살던 유일한 가족은 A씨였다. 수사관들은 남매가 살던 인천 남동구 한 아파트에 찾아가 ‘누나가 언제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2월 7일”이라고 답했다.
경찰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2월 6일 오전부터 7일 오후까지 녹화된 엘리베이터 CCTV 영상을 A씨와 함께 돌려봤다. 그러나 끝내 B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수사관이 ‘2월 7일이 맞느냐’고 재차 묻자 A씨는 “2월 6일 새벽”이라며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평소 누나가 외박을 자주 했다. 외박한 사실을 부모님에게 감춰주기 위해 7일에 집에서 나갔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한 건 경찰의 다음 수사다. B씨가 사라진 시점을 특정할 수 있는 중요한 증언을 남동생은 번복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관리사무소가 밤 12시를 넘겨 문을 닫자 A씨가 바로잡은 2월 6일 새벽 CCTV 영상을 확인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그 이후 더는 CCTV 영상을 살펴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A씨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지만, 가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유일한 동거인인 A씨의 말이 틀린 데도 추가 조사를 벌이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B씨가 집에서 나갔다고 한 시점의 CCTV 영상을 계속 확인했다면 남동생의 말이 계속 달라진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그럼 결국 남동생이 용의선상에 올랐을 것이고, 살인 범행은 막을 수 없어도 용의자는 더 빨리 잡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A씨의 거짓말은 계속됐다. 그는 경찰이 집에 다녀가고 이틀 뒤인 2월 16일 오전 카카오톡 메시지를 캡처해 수사관들에게 보냈다. 같은 날 오전 5시22분쯤 누나와 나눴다는 대화 일부였다. 그 안에는 “너 많이 혼났겠구나. 실종 신고가 웬 말이니.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라는 B씨의 메시지가 담겼다. 또 며칠 뒤 A씨가 “부모님에게 남자친구 소개하고 떳떳하게 만나라”고 하자 B씨가 “잔소리 그만하라”고 답장한 내용도 있었다.
경찰 수사관들은 A씨가 보내온 자료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카톡으로 누나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캡처해서 수사관에게 보내주더라. ‘동생이랑은 연락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매의 부모 역시 여기에 속아 딸이 살아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메시지들은 A씨가 누나의 휴대전화 유심(USIM)을 다른 기기에 끼워 혼자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자신의 거짓말을 이용해 경찰에 접수된 B씨의 가출 신고를 지난달 1일 취소하게 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새벽 시간대에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 자택에서 친누나 B씨를 집에 있던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해당 아파트 옥상에 10일간 B씨의 시신을 방치했다가 지난해 12월 말쯤 여행 가방에 담았고 그대로 렌터카로 운반해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에 있는 한 농수로에 유기한 혐의도 있다.
B씨의 시신은 4개월여 만인 지난달 21일 오후 2시13분쯤 인근 주민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여행 가방이 농수로 물속에 가라앉아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가방 입구가 제대로 닫히지 않은 탓에 결국 B씨의 시신이 물 위로 떠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은 발견 당시 부풀어 있었지만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B씨의 시신이 물 위로 떠 오르는 것을 우려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강화도 관련 사건 기사 등을 자주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는 해당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내 “기사를 내리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나의 발인이 있었던 지난달 25일 시신 운구 과정에서 영정을 직접 들었다.
검거 당시 A씨는 부모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는 “누나와 성격이 안 맞았고 평소 생활 태도와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범행 당일도) 늦게 들어왔다고 누나가 잔소리를 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현재까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우발적 범행이었음을 강조하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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