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있기 싫다”던 아이… ‘언택트 만남’에 달라졌어요

입력 2021-05-03 18:33


A군(13)은 열 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엄마와 살게 됐다. 아빠는 법원이 정해준 대로 한 달에 2번 아들을 만났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A군에게는 아빠에 대한 불편함이 싹텄다. 아들이 면접교섭을 피하기 시작하자 아빠는 법원에 이행명령을 신청했다. 수차례 아빠와 원치 않는 만남을 이어가던 A군은 지난해 가을, 더 이상 면접교섭에 나오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화라도 가능하겠냐”는 아빠에게 “문자만 보내라”고 답한 A군은 자신의 사건을 맡은 재판장에게 “아빠와 한 공간에 있기 싫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부자(父子)관계가 끊길까 고민하던 재판장은 화상 면접교섭을 제안했다. 지난해 말 열린 첫 화상 면접 교섭 때도 분위기는 얼어붙은 상태였다. A군은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지 않은 아빠에게 서운함을 드러냈고,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카메라도 껐다. 재판장은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 겸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아빠는 늦게나마 아들에게 태블릿PC를 선물했다.

한 달 뒤 다시 카메라를 통해 만난 아빠와 아들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A군은 태블릿PC에 그린 그림을 카메라에 비추기도 하며 재판장의 도움을 받아 아빠와 40분간 얘기를 나눴다. 지난 2월 열린 세 번째 화상 면접교섭 때는 재판장 없이 두 사람만의 만남이 이뤄졌다. 아이가 아빠의 전화조차 거부했던 걸 고려하면 큰 변화인 셈이다. 당시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장진영 부장판사(서울가정법원 면접교섭센터장)는 “대면방식에서 야기되는 심리적 거부감이 점진적으로 해소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A군처럼 비양육친과의 관계를 꺼리거나 코로나19로 대면만남이 어려워진 가정을 위해 법원이 화상 면접교섭 서비스를 도입한다. 서울가정법원은 3일 설명회를 열고 가정의 달인 5월부터 3개월간 화상 면접교섭 서비스를 시범 지원한다고 밝혔다. 면접교섭은 아이와 함께 살지 않는 부모 사이의 유대감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장치로 꼽힌다.

화상 면접교섭은 이혼한 지 6개월 이내의 가정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다. 법원 관계자는 “‘이혼 이후 6개월’이 비양육 부모와 아이 사이 유대감 유지를 위한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초등학생 이상의 미성년 자녀고, 부모 양쪽이 모두 동의했다면 신청할 수 있다. 현재 서울가정법원에는 A군 외에도 또 한 가정이 사전 면담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등 화상 면접교섭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실제 화상 면접교섭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시연도 진행됐다. 면접교섭을 돕는 상담위원이 화상회의 서비스 ‘줌’으로 회의방을 만들면 아이와 비양육친이 각자 집에서 접속하는 식이다. 장 센터장은 “혼인관계가 종료되어도 부모와 자녀 간 정서적 유대감 유지는 중요하다”며 “화상 면접교섭은 대면 교섭에 대한 보완적 의미와 함께 대면 면접교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