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에 시달린 사법부, 법원행정처장 교체의 의미

입력 2021-05-03 17:25
김상환 대법관. 대법원 제공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 이어 전국 법원의 사법행정사무를 감독할 신임 법원행정처장에 김상환 대법관이 임명됐다.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법원 안팎에서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라서 여느 때보다 중임을 맡은 처장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들을 판결했던 김 대법관인 만큼, 진영논리에 따라 사법부를 과도하게 비난해온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 처장의 후임으로 김 대법관을 3일 임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8일부터 김 대법관이 신임 처장직을 맡고 조 처장은 재판업무에 복귀한다. 법관들 틈에서는 지난 2월쯤부터 조 처장과 다른 대법관이 임무를 바꿀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고 한다. 처장이 된 대법관은 2년쯤 일하다 재판업무로 복귀하는 것이 그간의 관행이었다. 조 처장은 2019년 1월부터 2년 4개월가량 처장 임무를 수행해 왔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에 이어 사법부의 ‘2인자’로 통하는 중책이다. 그럼에도 김 대법관의 어깨가 앞선 처장들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는 게 법관들의 말이다. 김 대법원장이 거짓말 논란으로 일부 법제사법위원들의 항의 방문을 받는 등 사법부의 신뢰 문제가 거론되고, 법관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하게 인식된 ‘코드 인사’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인 조 처장과 달리 김 대법관이 법관 출신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는 법관들도 있었다. 일선 법관들이 최근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는 문제인 ‘사법권 독립’에 대해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그간 사법부는 정권과 관련한 형사재판의 판결들을 놓고 무분별한 비난에 시달리곤 했다. 한 법관은 “최근 판사 개인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 많았다”며 “신임 처장은 판사들이 우려하는 것들을 대법원장이나 정치권에 잘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재판해온 경험이 많은 편이다. 김 대법관은 2015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의 항소심을 맡아 1심에서 무죄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법정구속했었다. 당시 판결을 마치며 “공자는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다”고 논어를 인용, 원 전 원장을 훈계했다. 김 대법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정부 하에서 불이익을 무릅쓴 판결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사안에 따라 재판했다”고 답했었다.

김 대법관이 2015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선고를 유예했던 판결도 유명하다.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조 교육감은 이 판결에 따라 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김 대법관은 진보 성향이라는 시선에 시달렸지만, 그가 문용린 전 서울시 교육감에게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던 것이 반론처럼 제시되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만약 이념적 잣대로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재판에 임한다면 그는 이미 판사가 아니다”고 인사청문회 때 밝혔다.

대법원은 김 대법관을 “사회 각계와의 소통을 통해 사법개혁을 이끌어 갈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다만 그에게 사법행정 경험이 많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긴 하다. 한 법관은 “김 대법관은 ‘김명수 코트’의 하반기를 책임지게 됐다. 법원행정처를 다시 효율적 조직으로 변모시키는 과제도 안게 됐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