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러브콜이 더 쏟아진다…브러쉬씨어터

입력 2021-05-04 06:00 수정 2021-05-04 10:04
이길준 브러쉬씨어터 대표. 브러쉬씨어터는 5월 4~5일 국립국악원 예약당에서 '우기부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국악원 제공

어린이날이 있는 5월,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단체를 꼽으라면 단연 브러쉬씨어터다. 4월 29일~5월 8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소극장에서 ‘두들팝’, 5월 1일~6월 20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드래곤 하이’, 5월 4~5일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우기부기’가 잇따라 관객과 만난다. 5월 이후에도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등 아동·청소년 극을 기획한 공연장은 코로나19로 해외 투어가 중단된 브러쉬씨어터를 앞다퉈 초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 공연 취소되자 국내에 집중

“지난해 1월부터 4개월여의 미국 투어를 돌던 중 코로나19로 3월 12일부터 공연이 중단됐습니다. 지난해에만 해외에서 100여 회 공연이 예정돼 있어서 극단도 투자를 많이 했던 만큼 손해가 컸죠.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한국 시장에 집중하는 한편 지식재산권(IP) 사업을 확장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코로나 시기에도 전년도보다 매출이 더 올랐습니다.”

최근 국립국악원에서 ‘우기부기’ 연습 중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한 이길준 브러쉬씨어터 대표는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침체한 상황에서도 극단이 성장한 비결을 털어놨다. 2014년 말 설립된 브러쉬씨어터는 체험 중심의 공연과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앞세워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20여개 국가에서 500회 이상 공연했을 정도. 그런데, 코로나19 이후엔 적극적인 IP 확장으로 또다시 새로운 출구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브러쉬씨어터 '우기부기'의 배우들이 국립국악원 공연을 앞두고 지난 4월 23일 연주자들과 함께 연습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제공

“저희 작품의 라이선스를 해외에 팔고 있지만 최근 출판사와 협업해 공연 원작의 동화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문화산업에서 IP 확장이 화두인데, 공연 콘텐츠 역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게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극단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저희 공연이나 관련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한편 아이들에게 만들기 놀이를 체험해보도록 했는데, 꽤 인기가 있습니다.”

공연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에 몰두

수익 사업에 적극적인 브러쉬씨어터는 유한책임회사(LLC) 형태의 기업형 극단으로 공연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개 스타트업 기업이 초기에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있다가 성장하면 주식회사로 가는 것처럼 브러쉬씨어터 역시 장기적으로는 주식회사 전환을 목표로 한다. 현재 직원은 배우, 스태프, 기획, 기술 파트 등 총괄해 28명이다. 그리고 2019년 성수동에 마련한 사무실 겸 연습실은 종종 아이들 대상의 재밌는 이벤트를 열어서 엄마들 사이엔 핫한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이런 브러쉬씨어터의 행보는 국내 공연계에서 ‘별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극단 설립 전까지 이 대표 역시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약 10년간 극단 하땅세에서 배우, 홍보, 기획, 조연출 등을 맡는 등 흔히 볼 수 있는 대학로 연극쟁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연극을 하면 가난한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깨고 싶다는 바람을 내내 품었다.

브러쉬씨어터가 5월 1일부터 극장 용에서 공연하고 있는 스테디셀러 뮤지컬 '드래곤 하이'(왼쪽)와 이 공연을 원작으로 최근 발매한 동명의 동화책.

“동기나 후배들 가운데 생활고에 시달리다 무대를 떠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공연 생태계가 언제까지 예술가들이 희생을 바탕으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그리고 예술가가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극단이 급여나 4대 보험 외에 유명 K팝 회사처럼 성수동의 극단 사무실 겸 연습실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기분 좋게 일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브러쉬씨어터의 행보가 공연계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아비뇽과 에든버러 공연에서 배운 것들

그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브러쉬씨어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하땅세 소속으로 2013년 연극 ‘천하제일 남가이’로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 참가한 데 이어 2014년 아동극 ‘붓바람(BRUSH)’으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 유럽 투어에 나서면서다. 특히 ‘BRUSH’는 한국 공연으로 처음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독창적인 아시아 공연에 수여하는 아시안 아츠 어워드(Asian Arts Award)를 받았다. 라이브 음악과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로 이뤄진 ‘BRUSH’는 이듬해 또 다른 아동극 ‘오버코트’와 함께 2015년 에든버러 어셈블리 극장의 코리안 시즌에 초청돼 다시 에든버러 프린지 무대에 섰다. 그는 ‘BRUSH’ ‘오버코트’를 가지고 2015년 북미 아트마켓 등에 참석했으며 미국 중국 등의 대형 회사와 투어 계약을 맺었다.

“당시 하땅세에서 기획을 맡고 있어서 한국 작품의 해외 시장 개척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에든버러 프린지를 처음 준비하면서 ‘붓바람’의 제목을 ‘BRUSH’를 바꾸는 한편 극 중 대사를 줄이고 시·청각적 요소를 더욱 강조한 것도 외국인 관객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였죠. 이후 해외 아트마켓 등을 돌아다니면서 앞으로 내 작품을 만들면 우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뒤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적인 수입과 함께 스타 마케팅 위주의 국내 공연계에서 소규모 작품을 알리는 지름길이라고 봤거든요.”

브러쉬씨어터는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단과 달리 다채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소셜벤처를 표방하고 있다. 공연만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 활용으로 수익사업에 적극적인 브러쉬 씨어터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임팩트투자 유치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왼쪽), 서울 성동구의 '서울숲 소셜벤처 EXPO'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러쉬씨어터 제공

그가 2014년 말 극단을 만들며 이름을 브러쉬씨어터라고 지은 것은 ‘붓바람(BRUSH)’의 해외 진출에서 그가 체감한 것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물론 단어 자체가 단순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앞으로 해외에서 아동 공연 단체로서 극단을 알리기에 적합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2016년까지 하땅세의 기획도 겸했기 때문에 브러쉬씨어터 단독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사실상 2017년부터다.

브러쉬씨어터와 아시아문화원이 2016년 공동제작한 4D 음악극 ‘리틀 뮤지션’은 2017년 이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에서 연출상 등 4개 부문 수상했으며 2018년 에든버러 프린지 ‘어린이공연 베스트3’에 뽑혔다. 또 2018년 에든버러 프린지에 함께 가지고 갔던 미디어 드로잉쇼 ‘우기부기’ 역시 현지 신문 가디언으로부터 ‘2018 프린지 최고의 공연’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아시안 아츠 어워드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만큼 해외 공연이 많아진 브러쉬씨어터는 한국에선 만나기 어려운 단체로 불리게 됐다.

최근 실감 콘텐츠와 애니메이션에 몰두

“브러쉬씨어터의 작품들은 대체로 화려하지 않아요. 대신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치면서 순수한 느낌이 살아있죠. 상상력과 순수함이 브러쉬씨어터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앤 이머시브 씨어터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여기에 저희의 경쟁력은 기동성입니다. 그동안 해외 투어를 경험하면서 프로덕션의 간소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는데요. 예를 들어 ‘두들팝’만 하더라도 박스 1개면 그 안에 모든 도구가 다 들어가요. 그래서 극장만이 아니라 야외나 학교 강당 등 여러 공간에서 쉽게 공연할 수 있습니다.”

브러쉬씨어터는 지난해 중국의 대형 공연 회사 그랜드보트에 '두들팝'의 6년간 공연 라이선스를 판매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오디션 및 원격 기술 이전이 진행된 후 지난해 11월 중국 항저우에서 첫 공연이 올라갔다. 브러쉬씨어터 제공

이 대표는 코로나 이후 브러쉬씨어터 작품의 영상화와 함께 실감 콘텐츠 및 애니메이션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직 내용을 공개할 수 없지만 브러쉬씨어터의 실감 콘텐츠는 내년 제주도에서 상설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사회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브러쉬씨어터는 결국 지난해 중국의 한한령도 뚫었다. 지난해 11월 ‘두들팝’은 중국 공연 회사 그랜드보트와 6년간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는데, 화상회의를 통한 비대면 오디션 및 원격으로 기술 이전이 진행됐다. 또한 ‘두들팝’은 최근 남아공 스페인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온라인 유료 상영회로 현지 관객과 만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뉴욕 링컨센터와 뉴빅토리 시어터의 2021 디지털 시즌에 포함돼 있다. 브러쉬씨어터는 이런 상영회를 하며 MD 상품을 팔기도 한다.

“브러쉬씨어터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들과 차별되는 기술력, 매력과 함께 제작 및 유통 시스템과 브랜딩에 대한 고민이 여기까지 오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