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A씨는 특정 색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색약’이다. A씨는 지난해 입대를 앞두고 공군 현역병 지원을 결심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군은 48개 병과 중 군악·의장·의무·조리병 4개 병과만 색약자 지원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군 측은 “항공기 관제 등 색상 식별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분야가 많고, 신호를 잘못 볼 경우 대규모 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 모집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공군이 색약자를 부당하게 차별했다”며 올해 초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3일 공군이 색약자의 입대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결론냈다. 인권위는 “개인에 따라 색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고, 부대 내 업무에 따라 색각 구분의 필요성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색약 정도와 부대 업무 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입대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의미다.
육·해군보다 공군에서의 차별이 유독 심하다는 점도 결정의 이유가 됐다. 공군은 가장 낮은 수준의 이상으로 분류되는 ‘약도 이상’일 경우 현역병 지원을 아예 제한한다. 공군과 유사한 기술적 특수성을 지닌 해군과 비교해도 공군의 색약자 지원 가능 분야는 현저히 적다. 올해 3월 기준 색약자가 지원할 수 있는 특기 수는 육군이 189개 중 104개(55.0%), 해군이 29개 중 27개(93.1%), 공군은 27개 중 4개(14.8%)다. 인권위는 국방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에게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공군 측은 “분야별 임무 특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색약 같은 색각이상자에 대한 과도한 차별 금지 권고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6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군 조리병에 대해 색약자가 지원할 수 있도록 권고했고, 2016년에는 인권위가 색약자의 소방공무원 채용 제한 규정을 문제 삼았다. 권고 이후 소방공무원은 색맹과 적색약(적색 구분이 어려운 경우)을 제외한 중도 이상의 녹색약·청색약 색각이상자에 대해서는 채용 제한 규정을 없앴다.
하지만 여전히 색각이상자의 경찰 채용 문턱은 높다. 경찰은 중도 이상의 색각이상자는 아예 지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는 2009·2011·2018·2020년 네 차례에 걸쳐 경찰청에 채용 개선 권고를 내렸으나 경찰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인 추적, 총기 사용, 지도 판독 등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인권위는 “경찰청이 색각이상자 채용 제한 규정을 색약까지 넓히기 이전인 1999년까지 색구분 능력 부족으로 문제가 발생했던 적이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 또 경찰청 자체 임상시험 결과 중도 색각이상자가 피해자의 혈흔, 용의자의 의상을 구분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권위는 “일률적으로 채용을 제한하기보다 업무별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