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폭포 위에 광대가!… 옛 그림과 함께 떠나는 제주 여행

입력 2021-05-03 12:25 수정 2021-05-03 17:08
코로나 시대 ‘로컬’이 부상한다. 그 로컬의 상징인 제주를 여행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이 책 한 권을 옆에 끼고 가는 거다. 미술사학자 최열(65)씨가 쓴 ‘옛 그림으로 본 제주’(혜화1117). 구체적으로는 백록담, 천지연, 성산, 영곡 , 산방 등 ‘제주십경도’ ‘제주십이경도’ 속 명승을 찾아가며 조선시대 토박이 화가들의 눈으로 구경해 보는 거다.
'제주십경도' 속 '천지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들 옛 그림에는 조선 중기까지의 중국풍 관념 산수,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이 개척했다는 실경산수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맛이 있다. 그 신선함이 눈에 한 가득 들어온다. 저자가 그랬다. 20여 년 전이다. 제주 화가 김남길이 그린 41폭의 ‘탐라순력도’를 봤을 때 민화도 속화도 아닌 이 독창적 세계에 반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여정이 이 책으로 완결됐다. ‘제주를 그린 그림을 집대성한 최초의 저작’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영주십경도' 속 '산방'. 일본 고려미술관 소장. 혜화1117 제공

그림과 그림지도 135점을 망라해 제주를 그린 화가들의 예술적 성취와 그 가치를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내 기관과 개인 소장가 뿐 아니라 일본의 고려미술관, 오사카부립나카노시마도서관 등 해외 소장 그림까지 담겨 그림이 풍성하다.

제주도는 항해술이 발달하기 이전까지 환상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동쪽 끝 불로장생의 신비를 간직한 섬 ‘영주(瀛洲)’라고 믿었다. ‘영주십경도’라는 제목에는 토박이들이 자신의 땅에 갖는 자부심이 넘쳐난다.
'호연금서'.

한때는 탐라왕국을 이루었고, 신라와 고려시대까지도 자치정부 같은 왕국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앙집권체제에 편입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저자의 눈은 이처럼 제주의 유구한 역사에 닿았고, 1945년 패전을 앞둔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선택한 옥쇄 작전의 마지막 결전지였던 제주, 해방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른 민간인 학살사건 등 굴곡진 현대사의 아픔까지 어루만진다. 제주를 향한 그런 따뜻한 시선이 글속에 녹아있다. 그 마음이 김남길이 그린 ‘탐라순력도’ 마지막 그림 ‘호연금서’가 갖는 따뜻한 이미지와 닮았다. 사유의 흐름을 따라 노 젓듯 휘저어가는 글 솜씨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489쪽, 3만8500원.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