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41년이 흘렀지만...’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5·18민주화운동이 불혹을 넘겨 보름 후면 4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오는 10일 광주 도심 두 곳에서는 여전히 상반된 풍경이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5·18 가해자인 전두환 씨에 대한 형사재판, 다른 한쪽에서는 그날의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5·18 조사위 성과보고회가 1년여 만에 처음 열린다.
5·18 41주기를 1주일 앞둔 10일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전두환(90) 씨는 자신의 ‘무죄’ 입증을 위해 광주지법 법정에 선다. 전 씨는 항소심 첫 공판의 출석 의무를 지키기 위해 1심처럼 부인 이순자(82) 씨와 나란히 광주지법 법정동 201호 형사대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전 씨의 법률 대리인 정주교 변호사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지만, 출석 의무를 준수하기로 했다”며 “첫 공판 이후에는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달라는 사유서를 재판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씨는 지난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에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법정 출석과 헬기 사격 진위를 둘러싼 지루한 논란 끝에 지난해 11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같은 날 5·18 민주화운동조사위원회는 5·18 유혈 작전을 불러온 최초 발포명령자와 5·18 당시 실질적 지휘체계, 민간인 살상, 암매장 의혹사건 등에 대한 그동안 조사 활동 성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전 씨를 40년 만에 광주 도심의 법정에 서게 한 계엄군 헬기 사격 여부 문제도 당연히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다.
정부 차원의 마지막 진상규명 작업에 돌입한 5·18 조사위가 2차례 활동 보고서를 낸 적은 있지만,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성과를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다.
상반된 두 풍경은 41주기를 앞둔 5·18 진상규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5·18 특별법에 따라 출범한 5·18 조사위는 5·18 40주기를 닷새 앞둔 지난해 5월12일부터 지금까지 진상규명 작업에 몰두해왔다.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그 날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그동안 수사·재판 기록 60만 쪽 등을 토대로 발포 명령 등 7개의 우선 과제를 집중 조사했다.
하지만 조사위 권한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동행명령장’ 발부에 한정될 뿐 가해자 등에 대한 ‘강제조사권’이 없어 진상규명 작업이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줄곧 제기돼왔다.
이에 따라 5·18 조사위는 충분한 직접적 증거를 확보한 뒤 동행명령에 불응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두환 씨 등 증인에 대한 검찰총장에게 조사를 의뢰하거나 국회에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한다는 방침을 표명한 바 있다. 전 씨 등에 대한 증인소환이 가능하도록 국회에 특별법 개정도 요청해놓고 있다.
5·18 진상규명의 핵심은 최초의 집단 발포명령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무자비한 살상을 전제로 한 헬기 사격도 빠뜨릴 수 없다.
지금까지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회를 시작으로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 국방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8차례나 진행됐지만, 그날의 온전한 진실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오는 10일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를 방문하는 전두환 씨가 과오를 뉘우치고 광주시민들을 향해 진심으로 사죄하기 바란다”며 “40년 넘게 이어진 5·18 왜곡·폄훼·가짜뉴스의 뿌리가 된 군 기록의 조작 과정도 확실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