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일 대남·대미 담화 3건을 동시다발적으로 발표하면서 남측과 미국을 맹비난했다. 북한의 담화 연속발표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최근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했다고 밝힌 지 하루만으로, 오는 21일(현지시간)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긴장 고조 및 기선 잡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외무성 대변인·국장을 동원해 한·미 양측에 상응조치까지 경고해 한동안 저강도로 유지했던 도발 수위를 한층 높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 부부장은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지난달 25~29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이 단체 및 우리 정부를 맹렬히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은 쓰레기들의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며 “우리 국가에 대한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면서 그에 상응한 행동을 검토해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후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더러운 쓰레기들 통제를 바로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 국장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의회 연설에서 밝힌 대북 입장을 “대단히 큰 실수”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냉전시대의 낡은 정책으로 조미 관계를 다루려 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법으로 ‘외교(diplomacy)’와 ‘단호한 억지(stern deterrence)’를 거론했다.
북한은 또 최근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 국가 중 하나”라고 비판한 것에도 거세게 반발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국무부 성명을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자 “우리 국가의 영상(이미지)에 먹칠을 하려는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미국이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한 것은 우리와의 전면대결을 준비하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라며 “미국은 우리 경고를 무시하고 경거망동한 데 대하여 반드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대남·대미 담화를 동시에 낸 것은 북·미 대화 재개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불만을 드러내면서, 대북정책 기조 전환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를 위해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단계별로 긴장 수위를 높이는 식으로 남측과 미국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미 대화 조기 재개에 총력을 기울였던 우리 정부의 부담 역시 더 커졌다.
특히 북한은 남측에 대해선 대남 대화·협력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금강산국제관광국 폐지 및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 남측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6월 김 부부장의 대북전단 비난담화 발표 직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다만 북한은 현 단계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를 겨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곧바로 감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통일부는 “정부는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