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지난달 27일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통해 난자·정자 공여나 대리출산 등으로 이뤄지는 비혼 출산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고 발표하자 생명단체·의료계 등 전문가들은 비혼 출산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파장에 대해 우려하며 이 문제를 성급하게 논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비혼 출산에 의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충분하지 않고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운 만큼 비혼 출산을 한 인기 연예인을 앞세워 성급하게 비혼 출산에 대한 정책을 마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비혼 출산으로 생식의료 상업화, 여성의 임신 도구화, 동성 커플의 출산 등 심각한 생명윤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가부가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향후 5년간 가족정책에 대한 구상을 담은 건강가정계획에는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도록 법 제도를 가다듬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녀의 성(姓)을 결정할 때 아버지의 성을 우선으로 따르도록 하는 ‘부성주의 원칙’이 폐기되고 혼인·혈연·입양에 국한됐던 가족 개념을 넓혀 비혼 동거 커플이나 위탁 가족도 가족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방송인 사유리씨처럼 보조생식술을 활용한 비혼 출산 등에 대한 정책 검토도 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비혼 출산으로 정자·난자 매매의 가능성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양질의 유전자 선택을 통해 생명경시 풍토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성 커플의 대리모 출산, 인간 복제 등의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국가생명윤리위원장을 역임한 박상은 샘병원 미션원장은 “비혼 출산은 사유리씨에게서도 알 수 있듯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똑똑한 양질의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를 일으킨다”며 “결국 정자와 난자가 매매되는 것을 통해 인간이 물질화되고 상품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비혼 출산을 원하는 남성이나 동성 커플도 대리모 또는 인공 자궁을 통해 출산하는 문제도 일으킨다”며 “비혼 출산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정부의 한 부처가 쉽게 결정할 부분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이 사회적·철학적·의료적·생명윤리학적 등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하고 국민의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봉화 행동하는프로라이프 상임대표는 “비혼 출산이 우리 사회에서 많이 일어나면 결국 생명경시 풍토가 생길 것”이라며 “외국에서 이 문제의 부작용이 많이 증명돼 사회가 해결 방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데 마치 비혼 출산이 유행이고 방향성인 것처럼 정부가 이 문제를 끌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혼 출산으로 인한 아버지(또는 어머니)의 부재는 태어난 자녀에게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미혼모의 위기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비혼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춘기가 됐을 때 정체성 혼란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박리현 한국가온학부모복지협회 대표는 “사유리씨는 아빠 없이 자녀를 출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정자 기증을 통해 아이를 선택한 것”이라며 “미혼모는 어쩔 수 없는 개인 사정이 있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아이를 지켜낸 것으로 두 문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정부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동정을 이용해 비혼 출산을 이 문제로 엮어 다양한 가정의 개념으로 정의하며 몰고 가는 게 아닌가 싶다”며 “비혼 출산은 태어날 아이가 앞으로 겪을 정체성 혼란 부분과 친생부에 대한 알 권리까지 충분히 고려해주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지난 28일 여가부의 건강가정기본계획 발표에 대해 “다양한 동거인에 대한 분별없는 보호와 지원 계획은 전통적 혼인과 가족제도에 대한 해체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