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기라도 하면 8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요”
“‘왜 승객을 태워놓고 화장실 가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죠”
‘시민의 발’로 불리는 버스는 시민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을 책임진다. 그런데 정작 버스 기사들은 운전석에서 발을 떼기 힘들다. 용변과 같이 급한 용무로 난감해진 상황에서 운전을 계속하는 건 기사의 건강과 안전은 물론 승객의 안전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통 버스 운행 도중 용변이 급할 때면 기사들은 주유소나 상가 화장실 또는 공중화장실을 찾는다. 그조차 마땅치 않으면 길에 버스를 세워 두고 구석진 곳에 들어가 페트병 등을 임시방편 삼아 급히 볼일을 본다.
이런 근무여건 때문에 용변을 오래 참아 방광염 등 비뇨기계 질환에 걸리는 기사들도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1주일간 버스 기사들의 화장실 이용을 둘러싼 고충을 들어봤다.
버스 기사 화장실 어떻게 가나
일정한 경로가 정해진 버스의 특성상 해당 노선에 화장실이 없으면 운행시간 내 용변을 보기 어렵다. 서울시버스노조 위성수 국장은 1일 “화장실이 없는 노선의 경우 기사들이 운전 내내 화장실을 못 간다. 정 급하면 최대한 정류장에 잠시 세우고 근처 상가를 뒤져야 한다”고 말했다.왕복 55㎞ 노선을 운행하는 A기사(42)는 “(화장실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그저 꾹 참고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화장실 사용이 마땅치 않아 페트병이나 비닐봉지 등으로 해결하거나 노상 방뇨를 한다는 기사들도 있다.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버스를 운전하는 B기사는 “화장실이 급할 때는 손님 없을 때 (버스) 뒤쪽에 가서 봉투에다 볼일을 본다”고 했다. A기사도 “(정 급하면) 구석진 곳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온다”고 전했다.
운행 중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울 때 승객들의 눈치가 보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6년 경력의 C기사(58)는 “손님들이 왜 승객을 태워놓고 화장실을 가느냐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며 “며칠 전에도 너무 화장실이 급해 잠깐 다녀왔는데 손님 태워놓고 화장실을 간다며 (손님이) 그새 민원을 넣었더라”고 토로했다.
운행 중 기사가 자리를 이탈했다는 민원이 접수되면 회사 측으로부터 주의를 받는다. 승객이 민원 신고를 넣어 민원 건수가 쌓이면 버스 회사 서비스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이는 버스 기사들이 자주 오해하는 부분”이라며 “(용변이) 급하다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화장실을 갈 때는 회사 평가에 벌칙을 주지만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갈 때는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 공중화장실까지 닫혔다
코로나19 이후 버스 기사들은 쓸 수 있는 화장실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화장실을 폐쇄하거나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상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공중화장실법상 화장실을 개방하는 것이 원칙인 공공기관 화장실이나 공원 내 공중화장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버스노조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외부인 출입금지가 많아져 급한 경우 차를 세워두고 길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참다가 방광염 등의 질환을 겪는 사례도 늘었다”고 밝혔다.
C기사는 “그전에는 정 급하면 파출소나 상가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파출소 화장실을 못 갔다. 상가 같은 곳이라도 열어놓은 데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며 “한 번 (화장실이) 잠겨 있으면 다른 곳에 다시 차를 세워야 하는데 그러면 손님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참고 다닌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밤시간대에는 화장실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기사들의 용변권 확보에 특히 더 어려움을 겪는다.
버스 운행 경력 15년 차인 D기사(43)는 “(낮에) 개방했던 곳도 (밤에는) 잠가놓는 곳이 많다. 그래서 저녁에는 어쩔 수 없이 노상 방뇨를 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주변엔 19개 이상의 버스 노선이 지나다닌다. 하지만 마로니에공원 정류장 인근 공중화장실은 특정 시간(밤 11시~오전 6시50분) 이용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인지한 한 버스노조는 ‘버스 및 택시 노동자 마로니에공원 내 (화장실) 이용에 관한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서울시에 보냈다.
요청서에는 “공중화장실이 특정 시간 이용에 제한이 있어 운수 노동자들이 생리적인 현상을 해소하지 못해 상당한 애로점이 있다”며 “마로니에공원 내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대안을 마련해 주시기를 요청한다”고 적혀 있다. 위 국장은 “지난해 7월 15일 서울시에 요청서를 보냈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강제적으로 공중화장실을 개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마로니에공원 관련해 해당 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이 나간 것 같다”며 “해당 자치단체에서 협조를 해줘야 (화장실을) 개방을 할 수 있으며 (아직) 자치단체에서 수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장거리 기사의 경우 문제 더 심각해져
버스 기사들의 용변권 문제는 장거리 노선의 경우 더 심각하다. 서울 시내버스 노선 356개 가운데 운행거리가 60㎞ 이상이거나 운행시간이 4시간 이상인 장거리 운행 노선은 총 27개다.왕복 약 65㎞ 구간을 운행하는 D기사는 “서울시에서 측정한 운행시간은 4시간10분 정도지만 (실제로) 평균 운행시간은 5시간반, 정체가 되면 6시간이 넘어간다”며 “비나 눈이 오면 6~8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1월에 눈이 많이 왔을 때는 8시간 동안 운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원 접수나 과태료 등이 걱정돼 운행하기 전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나간다”며 “장거리 기사들은 운전하는 5~6시간 화장실을 못 가는 것은 물론 물도 못 마신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뇨기 관련 질환은 기사들의 직업병이 됐다. C기사는 “장시간운전을 하다 보니 오줌소태 같은 것도 있고 어떨 때는 다리에 힘이 없어 휘청거리고 넘어진다”고 말했다.
D기사는 “전립선 약을 먹고 있고 초보 기사들의 경우 화장실이 급해서 오줌소태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10년 정도 일하면 약 한 번씩은 다 드셨을 것”이라고 전했다. A기사도 “기사 대부분 참고 일하니까 방광 쪽이나 전립선 쪽으로 안 좋은 기사가 많다”고 밝혔다.
용변권 확보 난항…해결방안은?
기사들의 용변권 문제는 기사 본인은 물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742번 버스 기사는 “저희의 휴식시간과 근로여건은 곧 차에 탑승하시는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직결된다”며 기본권을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버스 기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 국장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이 소변 등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주요 거점에 화장실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했다.
근본적으로는 용변권 확보 및 피로 운전 해소를 위해 버스 운행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강신화 교수는 “장거리 노선을 줄이는 게 최선이고 기사들의 운행시간을 줄여서 (버스 노선을) 설계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이라며 “대규모로 (버스 노선을) 개편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장거리 노선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종점에 화장실이나 휴게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승객의 편의와 버스 기사의 노동권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을 줄이려면 단축하려는 구간에 대체노선이 마련돼야 하고 대체노선 없이 단축하게 되면 기존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며 당장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장거리 노선을 줄이는 쪽으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김아현 인턴기자